[사이언스 토크] 숲속의 군비 경쟁
입력 2013-06-07 17:33
포도당을 싫어하는 돌연변이 바퀴벌레 출현 소식이 전해졌다. 포도당은 거의 모든 생물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으로서, 바퀴벌레도 매우 좋아한다. 그런데 이 바퀴벌레들이 포도당을 싫어하는 이유는 더욱 놀랍다. 인간이 설치하는 살충제의 덫을 피하기 위해 그렇게 진화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를 발표한 미국 연구진은 인간과 바퀴벌레 간의 ‘군비 경쟁’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설명했다.
자연계에서 상대를 이기기 위해 서로 끊임없이 공진화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탁란을 하는 뻐꾸기와 숙주새 간에 이루어지는 군비 경쟁이다. 탁란이란 다른 종류의 새 둥지에 몰래 알을 낳아 대신 기르도록 하는 일이다.
뻐꾸기는 개개비 둥지에 알을 낳다가 들킬 것에 대비해 매와 비슷한 회색 깃털을 갖도록 진화했다. 매라면 개개비들이 질겁해 자기 둥지에 알을 낳아도 공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개비들이 속는 것도 한두 번이다. 이런 털을 가진 개체들이 공격당하기 시작하자 일부 뻐꾸기들은 회색 깃털 대신 밝은 적갈색 깃털을 장착했다.
뻐꾸기들은 숙주새를 선택할 때 자신의 알과 비슷한 색의 알을 낳는 종을 찾는다. 그래야 숙주새의 레이더망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뱁새의 경우 아예 흰색 알을 낳아서 청색인 뻐꾸기 알과 구분하는 개체가 생겼다. 그러자 일부 뻐꾸기들이 흰색에 가까운 알을 낳아 뱁새를 감쪽같이 속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덩치 큰 뻐꾸기 새끼가 왜소한 양부모 슬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먹이를 독차지해야 한다. 때문에 뻐꾸기 새끼는 태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다른 알이나 새끼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 버린다. 그러나 굴뚝새는 영리해서 자기 새끼가 모두 둥지 밖에 떨어져 있으면 뻐꾸기 새끼라는 것을 눈치채고 굶어 죽게 만든다.
이에 대비해 뻐꾸기 새끼는 굴뚝새 울음소리를 흉내낼 수 있도록 진화했다. 그런데 최근 호주에서는 가짜 울음소리를 내는 뻐꾸기 새끼들을 정확히 가려내는 굴뚝새가 등장했다. 비결은 부화하지 않은 알의 단계에서부터 가문 대대로 전해오는 특별한 울음소리를 미리 가르치는 것. 뻐꾸기 알은 굴뚝새 알보다 3일 먼저 부화하므로 이 울음소리를 미처 다 배우지 못해 가짜 울음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여름새인 뻐꾸기는 요즘 한창 알을 낳기 위해 숙주새들의 둥지를 들락거릴 때다. 이번엔 상대방을 속이기 위해 또 어떤 무기를 장착할까.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