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박유리] 세계의 기자들
입력 2013-06-07 17:32
올리비아 부아쟁(38)은 한국 입양아 출신의 프리랜서 사진기자다. 리비아 소말리아 케냐 등 세계 분쟁지역에서 활동한 부아쟁은 지난 2월 24일 시리아 이들립 지역에서 포탄 파편을 맞고 사망했다. 프랑스 국적의 부아쟁은 사망 4일 전 한 친구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냈다.
“결국 도착했어! 터키 당국이 국경 통과를 거부해 다시 한 번 불법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어. 국경 가까운 곳에 보초 서는 군인들에게 돈을 주고서야 아무도 없는 땅, 지뢰밭을 지날 수 있었어. 그러곤 감시탑 몰래 2㎞에 달하는 강바닥을 건넜지. 붙잡히거나 잘못된 길로 들어설까봐 얼마나 두려웠는지 몰라. 내 등에는 천근만근처럼 느껴지는 카메라 가방이 있었어. (…) 그래 맞아, 빌어먹을. 나는 사진에 중독됐지. 사진을 찍을 땐 믿기 힘들 정도로 살아 있다는 감정을 느끼는데 어떤 약도 그만큼의 생기를 주진 못할 거야. (…) 군인들이 프랑스 파리를 찍은 사진을 보여 달라고 할 때마다 힘들어. 그들에게 사진을 보여주지 않는데(사실 노트북에 파리 사진은 없어) 현실에 충실하고 과거나 미래로 가지 않기 위해서야.”
그는 편지의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마음에 갖가지 번민이 들 때 2차 세계대전 당시 리비아에서 사망한 프랑스 군인의 기도가 떠올라. ‘신이여, 다른 사람들이 거절한 것들을 제게 주십시오. 고통을 주십시오. 오늘 밤에 이런 기도를 하는 것은 내일 저의 용기가 부족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제여성언론재단(IWMF)이 수여하는 ‘용기 있는 언론인상’을 2006년 수상한 메이 시디악(50). 레바논 LBC TV의 정치 토크쇼 진행자인 시디악은 2003년 9월 승용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 폭탄이 터져 왼쪽 팔과 다리를 잃었다. 당시 레바논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내정 간섭을 하는 인접국 시리아를 비판하다 테러를 당한 것이다. 그녀는 지난 4월 24일 내가 쓴 메일에 답장을 보냈다. “나는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자주적인 고국이 되기를 꿈꿉니다. 나라를 위해 팔과 다리를 잃은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가 줄 수 있는 최소한의 것입니다.” 레바논은 현재까지도 친시리아와 반시리아 진영으로 나뉘어 내홍을 겪고 있다.
지난 4월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방문했을 때 만난 이라크 소녀 자흐라(가명·13). 기자인 자흐라의 아버지는 하루에도 수차례 폭탄 테러가 발생하는 이라크에서 테러리스트를 비판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이 보도 때문에 자흐라 가족은 테러리스트들의 표적이 됐고 차량 폭탄 테러를 당했다. 자흐라의 오빠는 다리를 다쳤고, 이후 가족들은 다른 중동 국가로 피신을 다녔다. 심각한 종파 분쟁을 겪고 있는 이라크에선 지난달에만 1045명이 폭력 사태로 사망했다.
반면 지금 터키의 기자들은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다. 권위주의 정부에 맞서 전국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지만 언론은 보도를 자제한다. 방송국들은 최루탄이 구름처럼 하늘을 덮은 날에도 펭귄이나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다큐멘터리, 요리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최소 1700여명이 연행되고, 경찰 진압 과정에서 3명이 사망했으며, 주부들이 골목골목에서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드리며 정부를 비판하지만 미디어는 평화롭다. TV 속 세상과 터키의 현실은 전혀 딴판이다. 언론에 분노한 시민들은 최근 터키의 3대 민영 방송국을 꾀 많은 원숭이로 묘사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비판했다. 원숭이들이 악을 보지 않고, 말하지 않고,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구 저 끝 터키에서 최루탄이 터지고 있을 지난 4일, 나는 한 대학에서 세미나를 하고 있었다. 최소 9만명이 사망한 시리아 사태에 관한 취재 경험을 나누는 자리였다.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더니 질문을 했다. “제가 한 언론사 기자님과 인터뷰를 했는데요. 나중에 기사 나간 걸 보니 제가 한 이야기가 그대로 쓰이지 않고 왜곡됐더라고요. 그분이 흥미 있는 부분만 확대해서 쓴 것 같아요.”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는 의사 한 분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얼마 전에 폭주족 기사를 봤어요. 의사 한 명이 거기 끼었는지 ‘의사 등 몇 명’이라고 썼더라고요. 의사들이 단체로 폭주한 것도 아니고, 그 집단 리더가 의사도 아닌데 왜 꼭 그렇게 쓰는 거죠? 난 좀 이해가 안 되어서.”
소심한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의사도 사회 지도층에 속한다는 사람들의 인식 때문에 그렇겠죠” 등의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살면서 “아니, 기자들은 왜 그래?”라는 질문을 한두 번 들은 것도 아니고.
전쟁을 고발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사진을 찍고, 소신을 지키다 테러를 당하는 위대한 기자들, 그리고 비판을 받는 비겁한 기자들…. 세계엔 수많은 기자들이 있다. ‘한국엔 좋은 기자가 더 많을까, 그렇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어디쯤 서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모임이 끝났다. 물 컵만 홀짝이다가 말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유리 국제부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