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흥우] 불편한 진실
입력 2013-06-07 17:32
현충일 추념식이 올해도 어김없이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엄수됐다. 이곳에는 정부수립 이후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호국영령’과 ‘순국선열’ 17만2121명(4월 30일 기준)의 유해와 위패가 모셔져 있다. 군인 외에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전직 대통령 3명을 포함해 임시정부 요인 18명, 애국지사 259명, 국가유공자 66명, 일반유공자 19명이 안치돼 있다.
애초 군인묘지로 조성된 국립서울현충원에는 수차례 법 개정을 통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고귀한 삶을 희생하고, 국가발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분’, 경찰관, 향토예비군, 소방공무원, 의사상자도 그 공로에 따라 안장될 수 있다. 정부가 이곳 외에 대전에 국립현충원을 추가 건립한 것은 그만큼 국가와 국민이 기리고 기억해야 할 애국자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그러나 국립묘지에 안장된 모든 이가 호국영령, 순국선열, 애국자는 아니다. 국립묘지에는 12·12 군사반란에 적극 가담한 자와 정부기관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반민족 행위자로 규정한 인사, 정부가 친일행위로 서훈을 취소한 인사 등 친일파 20여명도 묻혀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까지 포함하면 70명을 넘는다. 국민 세금으로 묘역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것으론 부족한지 매년 6월이면 대통령을 위시해 대다수 국민은 이들까지 기리는 묵념을 올린다. 불편한 진실이다.
얼마 전 국가보훈처는 독립운동가 구익균 선생의 현충원 안장을 불허했다. 선생은 도산 안창호 선생 비서실장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광복 후엔 반독재 투쟁을 벌였다. 정부는 그 공로를 인정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보훈처는 선생이 군부독재 시절인 1970년대 초 조세법 위반과 사문서 위조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는 이유를 들어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반란 가담자, 친일파는 현충원에 묻히고 그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 민주투사는 내쳐지는 부조리를 본다.
일본 정치인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때마다 우리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제어하지 못한다. 거기에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이 합사돼 있다. 일본은 B·C급 전범까지 포함해 이들을 ‘쇼와(昭和) 순난자(殉難者)’로 기린다. 일본 우익 세력은 “전범은 연합국이 일방적으로 규정한 것이지 국내법상 범죄자가 아니다”며 이들의 합사를 당연시하고 있다. 우리가 분노하는 것은 이러한 그릇된 일본의 역사인식 때문이다. 국립묘지에 안장된 반란 가담자, 친일파는 도외시한 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A급 전범을 문제삼는 게 낯간지럽기도 하다.
프랑스 국립묘지 팡테옹은 안장 기준이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거기에 안장되려면 최소 사후 10년을 기다려야 한다. 누구나 인정하는 대상자를 선정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우리는 미래에 12·12 군사반란 수괴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립현충원에 안장되는 모습을 보게 될 수도 있다. 전직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외환죄, 살인죄 등의 중죄를 저지른 자는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으나 내란죄 및 반란죄 수괴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확정받은 전 전 대통령은 사면·복권돼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전두환·노태우 국립묘지 안장금지법’으로 불리는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으나 통과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이 법의 통과될뿐만 아니라 이미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는 반란 가담자, 친일파의 유해를 다른 곳으로 옮길 때 역사는 바로 선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흥우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