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 이어 농협금융 회장까지… 모피아 제2 전성시대
입력 2013-06-06 18:52
‘모피아’로 불리는 기획재정부(옛 재정경제부 등 포함) 출신들이 금융권 요직을 쓸어 담고 있다. 최근 6개월 동안 저축은행중앙회장, 여신금융협회장, 한국증권금융 사장, 국제금융센터 원장 등 민간금융단체, 공사 등을 잇따라 차지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신한·하나금융과 기업은행에 이어 우리금융 회장에 내부 인사가 올라서면서 ‘관치’가 막을 내리는 듯했다. 하지만 KB금융, NH농협금융 회장에 기재부 출신이 앉으면서 기류는 다시 바뀌었다.
재경부 영어 약칭(MOFE)과 마피아의 합성어인 모피아는 낙하산 인사 철폐를 선언한 박근혜정부 들어 오히려 다시 전성기를 맞는 모습이다. 이들은 정부에 몸담았던 자신이 당국과 소통에 적임자라고 주장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지적과 함께 관치 강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NH농협금융은 6일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를 열고 임종룡 전 국무총리실장을 차기 회장으로 내정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차기 회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인물은 정용근 전 농협중앙회 신용부문 대표와 배영식 전 새누리당 의원이었다. 임 내정자는 막판에 등장해 내부 인사와 정치권 인사를 모두 물리친 셈이다.
회추위는 “임 내정자가 금융·경제 분야의 전문지식과 폭넓은 경험으로 NH농협금융의 경영 환경을 빠르게 이해하고 청사진을 제시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관료 조직의 ‘지원사격’이 결정적이었다고 본다. 임 내정자는 행정고시 24회로 재경부 금융정책과장과 경제정책국장, 기재부 제1차관 등을 지냈다. 선후배 사이에서 신망이 두텁다고 알려져 있다.
전날 KB금융 회장으로 내정된 임영록 사장까지 감안하면 국내 6대 금융지주(우리·KB·신한·하나·NH농협·KDB산은금융지주) 가운데 2곳을 모피아가 접수한 것이다. 임 사장의 내정 배경에도 관료들의 후원이 있었다는 후문이 무성하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임 사장과 경기고·서울대·행시 선후배로 엮여 있다. 조 수석은 임 사장이 재경부 제2차관을 맡았던 시절 차관보였다.
금융권에서는 임 사장이 KB금융 출범 이후 첫 관료 출신 회장으로 낙점돼 또 하나의 금융지주에 모피아가 진입할 수 있는 물꼬를 텄다고 보기도 한다. 정부 산하기관과 각종 금융 공기업을 독점하던 모피아가 이제는 민간 금융회사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민간 금융단체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는 민간 금융회사 수장 자리도 경제 관료끼리 주고받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현재 금융권 수장 자리를 차지한 모피아는 최근 여신금융협회장와 국제금융센터 원장에 각각 내정된 김근수 전 기재부 국고국장, 김익주 전 기재부 국제금융국장을 비롯해 박병원 은행연합회장(전 재경부 1차관), 김규복 생보협회장(전 재경부 기획관리실장), 문재우 손보협회장(전 재경부 경협총괄과장), 최규연 저축은행중앙회(전 기재부 국고국장), 박재식 한국증권금융 사장(전 기재부 국고국장) 등이다.
양석승 대부금융협회장도 재무부 출신이다. 주요 민간 금융단체는 금융투자협회를 빼고 모두 모피아가 회장으로 있는 셈이다. 최근 사의를 표명한 우주하 코스콤 사장도 재경부 국장을 지냈다.
금융권으로 진출하는 관료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관치를 위한 지렛대라는 게 공공연한 평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민간 금융회사는 기재부나 금융위원회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이 기관 출신들을 영입하는 것”이라며 “지금처럼 금융권 수장들이 물갈이되는 시기에는 ‘모피아 모시기’ 경쟁이 벌어진다”고 털어놓았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창욱 강준구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