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원전 마피아’ 먹이사슬 고리를 끊어야 한다

입력 2013-06-06 18:43

원자력 발전소를 둘러싼 끊임없는 비리의 핵심은 납품업체와 민간 검증기관 사이의 물고 물리는 마피아 같은 인간관계의 존재에 기인한다. 여기에다 검증보고서 승인기관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자회사인 한국전력기술(한전기술)의 무능과 부패가 더해지고 한수원의 수수방관이 비리의 정점에 방점을 찍는다. 말하자면 한수원 고위 간부를 지낸 퇴직자들이 원전 협력업체에 재취업해 선후배 관계를 악용해 대충대충 일을 처리하는 식이다.

이번 원전비리 수사의 핵심 타깃이 된 민간 검증기관 S기업의 경우 대주주가 원전 부품의 승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한전기술 출신이란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각종 원전 부품 및 장비의 시험성적서 승인 등 감리역할을 독점하는 한전기술 출신 인사가 거꾸로 감리를 받아야 하는 기업에 몸을 담고 있으니 감시가 제대로 될 까닭이 있겠는가. 부품 검증을 S기업이 맡게 된 것도 한전기술 측이 압력을 행사한 때문이라고 하니 이들의 먹이사슬이 어디까지 뻗쳤는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원자의 핵분열에 의해 만들어진 열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는 공정인 원자력 발전 분야를 일반인들이 잘 모른다는 점을 악용해 특정대학 출신들이 독점해왔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배타적인 전문성을 앞세워 부품 제작, 검사, 감독, 가격결정 등 모든 과정을 아무런 장애 없이 무사통과하는 유착구조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 된다. 이런 폐쇄적인 구조 속에서는 정부나 한수원, 한전기술은 물론 원전 제조업체와 시험기관 등의 먹이사슬 고리가 끊어질 수 없다.

그동안 납품비리 등 원전비리가 터질 때마다 정부는 재발을 막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처럼 끈끈하게 엮여 있는 마피아 같은 거악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어떤 대책도 효과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원전 납품 비리 수사가 검찰 스스로 인지(認知)한 것이 아니라 모두 업체의 제보를 통해 이뤄졌다는 점이 단적으로 증명한다. 심하게 말하면 남품업체나 검증업체는 물론 한수원, 한전기술 등등이 이런 비리를 알고서도 서로에게 이득이 되니 눈감고 침묵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기술은 물론 참고할 만한 법과 제도도 없어 일본이나 미국의 법률을 어렵게 번역해 오늘날의 원전산업을 있게 한 초기 일꾼들의 노력을 결코 모르지 않는다. 그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는 당당한 원전수출국가로 자리매김하지 않았는가. 그렇지만 이들 원전 선진국들은 부품제조와 검사기관 및 감사기관을 모두 분리해 서로 견제하는 장치를 마련한 지 이미 오래다. 동종교배가 저질불량을 양산한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 아닌가. 이제 원전 마피아가 기생할 수 없는 여건을 만드는 데 모든 힘을 집중할 시기가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