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존은 ‘눈치존’… 경찰 보이면 슬슬, 없으면 쌩쌩

입력 2013-06-06 18:22


지난 5일 초등학생들이 한창 하교할 시간인 오후 4시10분쯤 서울 정릉동 숭덕초등학교 좌측 교차로에 이동식 카메라와 함께 서울 성북경찰서 교통안전계 소속 경찰관 2명이 등장했다. 숭덕초등학교는 정릉에서 15도의 급경사 길이 300m가량 이어지는 도로 끝자락에 있다. 경사가 급하다 보니 1주일 전쯤엔 키를 꽂아둔 차량 한 대가 핸드브레이크가 풀려 미끄러지면서 다른 차량 5대를 들이받는 사고까지 났다.

이기호 경사는 교차로 중간 부분에서 이동식 카메라에 눈을 대고 운행하는 자동차들의 시속을 꼼꼼히 확인했다. 고개를 넘으며 속도를 내던 차량들도 ‘정지선 위반, 영상 단속’이라고 쓰인 형광색 조끼를 입은 경찰관들을 보고 다급하게 속도를 줄였다.

경찰은 이 학교 교차로에서 3월부터 수시로 이동식 과속단속을 하고 있다. 하루 5∼6건에서 많을 땐 9∼10건의 과속차량이 적발된다. 제한속도는 어린이 보호구역 기준인 시속 30㎞인데 보통 45㎞ 이상 달려오는 차량이 많다고 한다.

이동식 과속단속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지난해 1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성북서 관내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발생한 교통사고가 13건, 부상자는 14명이나 됐다. 올해 같은 기간엔 교통사고 8건, 부상 9명으로 38%가량 줄었다. 지난해 관할 어린이 보호구역에선 사망사고도 2건 있었지만 올해엔 아직 1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 경사는 “단속이 강화됐다는 소문 때문인지 위반 차량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며 “쌩쌩 달리다가도 단속을 하는 줄 알면 법규를 잘 지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날 기자가 단속에 동행했던 2시간 동안 이 구역에서 과속을 하는 차량은 없었다. 단속을 하는 것만으로 예방 효과가 큰 셈이다. 학부모 이상섭(45)씨는 “카메라로 단속하고 경찰관이 지키고 있으니 그나마 안심이 된다”며 “평소 경사길을 타고 쌩쌩 달리는 차들을 볼 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단속 나왔을 때만 반짝 효과가 있는 건 아닐까 씁쓸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달 10일 서울 시내 경찰서에 공문을 내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이동식 과속단속 카메라를 이용해 과속운전자를 단속하도록 권고했다.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적발건수는 1120건이나 된다. 도봉서 188건, 서초서 184건, 영등포서 174건 순이다.

현행 도로교통법 시행령에 따르면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신호위반·과속운전 시 가중 처벌된다. 이 구역에서 과속하면 원 벌점(15점)의 두 배인 30점. 과태료도 5만∼6만원의 두 배인 12만∼13만원이 부과된다. 또 사고발생 시 피해자와 합의를 해도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서울지방경찰청 전순홍 교통안전계장은 “이동식 단속 카메라로 교차로 꼬리 물기가 많이 사라지는 걸 보고 어린이 보호구역에도 이 제도를 추천하게 됐다”며 “어린이 보호구역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낮은 편인데 운전자들이 자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미나 박세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