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울산·경남’ 방문의 해] 함양 ‘지리산 둘레길’ 느리게 걷는 즐거움
입력 2013-06-06 17:21
경남 함양군의 지리산 둘레길은 전라도·경상도를 가르는 지역감정이 없는, 그야말로 정겨운 옛길이다. 이 길은 숨 가쁘게 살아낸 삶들에게 ‘낮고 느리게 사는 법’을 들려준다. 정상 정복만 고집하지 않고 낮고 느리고 수평적으로 걷는 즐거움을 일깨운다.
지리산 둘레길은 제3구간과 제4구간이 먼저 만들어졌다. 제3구간은 전북 남원시 인월면과 경남 함양군 마천면을 연결한다. 이 구간은 중군마을, 당항마을을 지나고 등구재를 넘어 창원마을, 금계마을로 이어지는 19㎞ 구간이다.
보통 7시간 정도 소요되는 길이지만 매동마을에서 창원마을까지 4시간짜리 코스를 선택할 수도 있다.
제4구간은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에서 휴천면 동강리까지 이어지는 15㎞ 코스다. 벽송사능선, 송대마을 등을 지나는 이 코스는 여행자들의 무분별한 농작물 채취와 지역주민 간 갈등으로 한때 폐쇄되기도 했다. 산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코스여서 여행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다.
코스가 시작되는 의평마을을 지키고 있는 600년 묵은 느티나무는 여행자들에게 ‘시간에 대한 사색’을 제공한다. 이 마을 일대는 고려시대 숯을 구워 중앙에 공납했던 의탄소(義灘所)가 있던 곳이다. 의중마을에서 30분을 가면 서암정사와 벽송사가 있다. 벽송사는 6·25전쟁 중에 빨치산야전병원이 있던 곳이다. 이 일대는 수백명의 빨치산과 토벌군이 서로 피 흘렸던 살육의 현장이다.
함양군의 또 다른 자랑은 상림공원이다. 이 길을 거닐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천연기념물 제154호인 이 공원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다. 1100년 전 통일신라시대에 대학자 최치원이 조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해마다 겪는 물난리로 시름하는 백성을 위해 둑을 쌓고 나무를 심은 것이 오늘의 상림공원이 됐다.
오도재(773m)는 삼봉산(1187m)과 법화산(991m)이 만나는 지리산 관문의 마지막 쉼터다. 오도재 정상에는 성곽 길이 38.7m, 높이 8m, 너비 7.7m에 달하는 지리산제일문이 있다. 함양군이 2006년 11월 준공한 이 문에는 함양 출신 명필 정주상 선생의 글을 서각가 송문영 선생이 전각한 현판이 걸려 있다. 이곳은 천왕봉을 비롯한 지리산 고산준령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도재는 흥부전 춘향전 등 판소리 12마당의 하나인 변강쇠타령의 지리적 배경이기도 하다. 변강쇠와 옹녀는 순후하고 살기 좋은 곳을 골라 전국을 떠돌다 오도재에 정착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함양=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