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기자 출신의 생생한 르포문학 ‘헤로도토스와의 여행’
입력 2013-06-06 17:20
리샤르드 카푸시친스키(1932∼2007). 폴란드 출신의 언론인이자 르포작가인 동시에 시인이며 사상가인 그의 이름은 우리에게 생소하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르포르타주 에세이스트로서 명성이 높다.
그는 폴란드 통신사 해외특파원으로 전 세계 50여 개국의 취재를 담당했으며 총 27차례에 걸쳐 혁명과 쿠데타를 직접 경험한 종군기자다. 40회에 걸쳐 체포 및 구금을 당했고 네 번이나 처형의 위기를 겪은 우리 시대의 증인이기도 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인도 출신 영국 소설가 살만 루시디는 “쓸데없는 눈물이나 환상을 만들어내는 삼류 문인 천 명보다 카푸시친스키 한 사람이 훨씬 더 가치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헤로도토스와의 여행’(도서출판 크림슨)은 그에게 이탈리아 ‘모란테문학상’을 안긴 그의 마지막 자전적 에세이이다. 지리도, 문화도 낯설기만 한 세계 방방곡곡의 다양한 국가를 떠돌았던 카푸시친스키는 자신의 기나긴 여정을 2500년 전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의 생애와 그가 남긴 저작 ‘역사’의 집필 과정에 비유하면서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미적 감수성과 보편적 정서를 이끌어낸다.
“헤로도토스가 살던 세상에서 거의 유일한 기억의 저장고는 인간이었다. 때문에 그 저장고를 열어보기 위해서는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직접 찾아가야 했다. (중략)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헤로도토스에게 들려주었다. 하지만 과연 그들은 자신들의 기원과 자신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알았을까.”(112쪽)
인류의 역사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 전에 그것을 수집 정리해야겠다고 결심한 헤로도토스처럼 카푸시친스키 역시 24세 때 폴란드 일간지 ‘젊은이의 깃발’ 특파원이 돼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으로 장기 취재 여행을 갔다. 아울러 아프리카 전역, 중국과 소련 그리고 남미 전역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거의 모든 분쟁 지역을 돌아다니며 진정한 의미의 르포르타주를 남겼다.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궁극적으로 인간의 이야기였듯 카푸시친스키의 작업도 국가와 국가 사이의 경계를 넘는 일 이전에 사람과 사람과의 경계를 넘는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카푸시친스키 자신이야말로 현대판 헤로도토스였다. 최성은 한국외국어대 폴란드학과 교수 옮김.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