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이방인 시선 속 조선의 풍경·사람들

입력 2013-06-06 17:51


조선을 찾은 서양의 세 여인/정영목/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일제강점기인 1920년을 전후해 조선을 찾은 세 여인이 있다. 각각 간호선교사인 베라 잉거슨(1890∼1971), 부유한 컬렉터 거트루드 워너(1863∼1951),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가 그들이다.

잉거슨은 미국 북장로교회가 1916년 평안도 선천에 파견한 의료 선교사다. 워너는 미국 동부 명문 바사대학을 나온 지식인 여성. 첫 결혼에 실패한 후 41세에 극동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던 중 중국 상하이에 거주하던 현지의 미국 무역회사 임원인 새 남편과 만난 것이 계기가 돼 컬렉터 인생을 시작했다. 남편이 어마어마한 재력을 갖춘 미술품 수집가였던 것이다. 여행 전문 영국인 화가인 키스는 비슷한 시기 동양을 여행하며 조선 일본 등의 풍속과 관련해 무수한 목판화를 남겼다.

“직업이 서로 다른 이들은 각자의 시선으로 조선을 본 기록물을 남겼지요. 편지와 보고서, 사진과 그림, 그리고 책 등 이들의 기록물을 통해 옛 우리의 모습을 재현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책을 썼어요.”

‘조선을 찾은 서양의 세 여인’(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의 저자 정영목 서울대 미대 교수(서양화과)는 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수년 전 미국 오레곤대학에서 안식년을 보내던 중 이들에 관한 희귀자료를 찾아냈다”고 말했다. 책에 소개되는 이들 기록물은 한국에서 발표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학술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정 교수의 학자적 시선은 이들이 남긴 기록물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본다.

“서로 직업은 달랐지만 이들 역시 서양 우위 오리엔탈리즘적 사고의 범주와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잉거슨의 경우 조선을 여행만 했던 다른 두 여성과 달리 조선인과 고락을 함께 하면서 식민지 조선의 삶에 연민과 동정을 느끼지만, 근본 이방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본다. 이런 저자의 관점은 독자로 하여금 그들이 남긴 조선에 관한 수집품이나 기록물, 그림 등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

워너의 수집품 중 각각 조선과 일본을 담은 랜턴 슬라이드 사진은 그 채색 기술의 차이로 인해 ‘문명의 일본 vs 미개의 조선’의 대비적 이미지를 갖게 한다. 슬라이드 사진을 접한 서양인들은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 지배를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장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워너는 전쟁조차 미술품을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기회로 보는 ‘자본가’였다.

정 교수는 키스의 목판화에선 또 다른 각도에서의 오리엔탈리즘을 읽어낸다. 새벽에 노인이 손자와 함께 젖소를 타고 가는 풍경을 그린 ‘조선의 아침, 원산’, 폭포물에 용의 머리를 그려 넣은 ‘환상의 금강산’ 등이 예다. 정 교수는 “왜곡뿐 아니라 동양의 신비를 위해 이처럼 과장하는 것 역시 조선의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새롭게 소개되는 풍부한 도판은 저자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뒷받침해준다. 그래서 읽는 책이면서 동시에 보는 책이기도 하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