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재중] 인사는 수첩이 아니라 시스템
입력 2013-06-06 18:42 수정 2013-06-06 22:32
박근혜 대통령이 4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여야 정치권과 언론들이 저마다 평가를 내놓았다. 잘했다고 평가한 부분도 있고, 못했다고 질타한 부분도 있다. 평가가 갈리지만 공통점은 초기 인사에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와 최경환 원내대표조차 박 대통령의 초기 인사 실패는 뼈아픈 실적이라고 인정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을 전후해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와 장·차관 5명이 낙마했다. 그때마다 ‘밀봉 인사’ ‘나홀로 인사’ ‘수첩 인사’가 도마에 올랐고, 언론들은 인사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선을 촉구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은 달라지지 않았다. 대통령의 방미기간 중 대사관 인턴여성 성추행 의혹에 휘말린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경질은 인사실패의 정점을 찍었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에서 당선된 뒤 5일 만에 첫 인사로 윤창중 카드를 꺼냈을 때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거의 모든 언론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그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과 청와대 대변인으로 연거푸 임명했고 결국 최악의 인사 참사로 이어졌다.
대통령의 인사권은 헌법에 보장된 고유 권한이다. 대통령은 국무총리와 장·차관을 비롯해 공기업 사장, 정부산하기관 기관장 등 1000개에 이르는 주요 직위 인사권을 행사한다. 하지만 그 인사권은 국민이 대통령에게 국정을 올바로 수행하라고 위임한 것이므로 절제되고 책임 있게 행사되어야 한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인사수석을 지낸 민주당 박남춘 의원이 최근 참여정부의 인사시스템 구축과 인사 과정의 생생한 경험담을 담은 ‘대통령의 인사’라는 책을 펴냈다. 박 의원은 서론에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지켜보면서 왜 그들이 인사정책에 저렇게 무능하고 인사에 실패해 국가적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지 답답한 마음이 들 때가 많았다”며 “인사는 ‘수첩’이 아니라 ‘시스템’이다”고 꼬집었다. 역시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인사검증을 맡았던 민주당 문재인 의원도 추천사에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인사 실패를 보며 ‘왜 지난 정부의 인사 노하우를 활용하지 않는 걸까’하고 생각했다”며 “시스템에 의하지 않는 인사는 참으로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참여정부 역시 인사실패가 적지 않았다. ‘코드 인사’니 ‘회전문 인사’니 하는 비판도 많았다. 하지만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국가인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인사검증 매뉴얼을 만들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 견제와 균형의 인사시스템을 추구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의 인사기록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게 일반적이다.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되면 열람할 수도 없거니와 지난 정권의 존안자료(存案資料)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비록 정권마다 인사 기준은 다르더라도 인재발굴에서 인사추천, 인사검증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공통된 절차이고 시행착오에서 오는 교훈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정권은 달라도 정부는 영속한다는 점에서 과거 정권의 경험을 토대로 인사시스템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박 대통령과 인사위원장인 허태열 대통령 비서실장, 곽상도 민정수석, 인사 관련 담당자들이 박 의원의 책을 꼭 일독해 볼 것을 권한다. 참여정부에 대한 자화자찬이 많은 게 흠이지만 현 정부에 절실히 요구되는 시스템 인사의 성과와 한계를 담고 있으니 참고가 될 것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재중 정치부 차장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