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존댓말과 반말 사이
입력 2013-06-06 18:43
아이에게 친구같이 편안한 엄마가 되고 싶다는 친구가 있다. 권위적 부모는 아이 마음에 생채기만 남길 뿐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그는 두 딸의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늘 애쓰고 있다. 그런데 세 모녀의 일상에 들어가 보면 뭔지 모르게 마음이 편치 않다. 안 해, 저리가, 이리 와봐, 이거 먹어, 저거 사와…. 외줄 타듯 아슬아슬 신경을 건드리는 아이들의 반말 공세. 불편함과 걱정스러움에 표정관리가 잘 안 된다. 아이들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그 꼬리에 ‘요’자를 붙여주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다.
사실 친구도 가끔 언짢을 때가 있다고 한다. 특히 야단칠 때 앙칼지게 반말로 대드는 아이를 보면 친구 같은 엄마고 뭐고 당장에 반말 금지령을 내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고 한다. 하루는 꼬박꼬박 반말로 대거리하는 작은 아이가 하도 밉살스러워 이제부터 존댓말을 쓰라고 했다가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고 한다. 엄마도 할머니한테 반말하니까 자기도 해도 된다는데 딱히 반박할 수 없어 그냥 웃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존댓말을 쓰게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친구는 살짝 고개를 갸우뚱했다. 억지로 시키려다 보니 말끝마다 트집 잡는 것 같고 부자연스러워 그만두었다는 그는 존댓말을 쓰는 것과 아이가 바르게 자라는 것은 별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이후 벌어질 논쟁을 원천봉쇄했다.
그런데 친구 기분이 상할까봐 그날 제대로 말은 못했지만 사실 존댓말이 인성 발달에 미치는 영향은 과학적으로도 설명 가능하다. 사람이 존댓말을 할 때는 뇌의 전두엽이 활성화되면서 감정을 담당하는 측두엽의 활동을 억제해 흥분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다 한다. 적어도 존댓말을 쓰면서 미숙한 자기감정을 그대로 배설하며 막말과 분별없는 행동을 일삼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바르게 자란 사람의 표상을 한마디로 할 수는 없지만 건강하고 성숙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바로 그 본보기가 아닐까.
인간관계의 기본은 적절한 의사소통에 있다. 이를 위해 아이가 말을 배워가는 시기에는 의사전달을 위한 언어뿐만 아니라 사회 정서와 상황에 맞는 행동양식도 함께 배우게 된다. 존댓말 교육 또한 그 일부가 되는 것이고 사회성과 기본소양을 키우는 중요한 시간인 것이다. 토대가 부실한 집은 뒤틀리고 무너지기 쉽다. 나중에 보수공사로 애먹지 말고 제때 제대로 가르치자.
김희성 (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