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복주머니蘭
입력 2013-06-06 18:39
지난 주말 강원도의 해발 1300m 산의 깊은 속살을 느끼며 걷고 있었다. ‘한국의 재발견’ 식물탐사대 리더인 현진오 박사가 갑자기 탐방로에서 옆으로 100m가량 떨어진 곳으로 안내했다. 사진으로만 보던 복주머니란이었다. 탐사대원들은 탄성을 지르며 ‘귀하신’ 꽃으로부터 5m 떨어진 곳까지만 접근해 동그랗게 포토라인을 형성했다. 3∼4장씩 펼쳐진 연두색 잎 가운데로 붉은 보라색 큰 꽃이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멸종위기생물 Ⅱ급인 복주머니란의 원래 이름은 개불알꽃이다. 핏줄 같은 맥이 그물 형태를 이루고 있는 입술꽃잎 모양이 개의 불알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환경부가 이 명칭이 좀 민망하다고 해서 복주머니란으로 개명했다. 그렇지만 영어명칭도 불알이라는 뜻이며, 속(屬)명 ‘시프리페디움’은 ‘비너스의 샌들’이라는 뜻이다. 근처에 가면 소변 냄새와 같은 악취가 진동하기 때문에 까마귀오줌통이라고도 하고, 둥글고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어 요강꽃이라고도 부른다. 5∼6월에 피는 복주머니란은 꽃이 예쁜 난초과 식물들이 그렇듯이 무분별하게 채취되어 사라지고 있다. 탐사대원들은 아쉽고도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내년에도 이곳에서 복주머니란을 볼 수 있을까.
복주머니란보다 더 귀하신 몸이 그와 비슷하게 생긴 광릉요강꽃이다. 멸종위기생물 Ⅰ급인 광릉요강꽃은 큰복주머니란으로도 불리며 4∼5월에 연한 녹색이 도는 붉은 꽃이 줄기 끝에 밑을 보고 핀다. 강원도 화천, 전북 덕유산국립공원 등의 깊은 산속 음지에서만 700개체 정도 남아 있다. 2007년 덕유산에서 발견된 54개체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주변에 철조망을 치고 CCTV를 설치한 것도 모자라 비밀아지트 안에 감시원이 24시간 지키고 있다. 덕분에 이곳의 광릉요강꽃은 6년 만에 89개체로 늘었다. 그밖에도 내장산의 깃대종인 진노랑상사화는 전기철조망으로 보호받고 있고, 설악산의 홍월귤 자생지는 사람이 밟지 않도록 목재 데크를 설치해 놓았다.
야생생물을 멸종으로 몰아넣는 요인들을 흔히 히포(HIPPO)라고 한다. 서식지 파괴, 외래종 침입, 인구증가, 오염, 과도한 포획(채취)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서식지 파괴가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멸종요인이지만, 난초과 희귀식물들은 자생지 파괴보다 불법채취가 더 큰 위협인 경우다. 캐 가려는 비양심과 지키려는 양심이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일대 격전을 치르고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