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랑 안전모 한개… 쌩쌩 달리는 車 사이 목숨 건 청소

입력 2013-06-05 18:22


지난달 24일 오전 9시40분쯤 서울 천호대교 중간쯤에서 질주하는 차들을 아슬아슬 피해가며 왕복 6차로를 횡단하는 이가 있었다. 형광색 작업복에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든 환경미화원 김모(40)씨. 그가 도착한 보행로에는 담배꽁초, 성인용품 전단지, 계란포장지 등이 어지럽게 뒹굴고 있었다. 김씨는 이를 하나하나 쓸어 담았다.

길이 1.15㎞ 천호대교의 남쪽 절반은 강동구, 북쪽 절반은 광진구 환경미화원이 담당한다. 강동구청 소속인 김씨는 “횡단보도로 건너려면 다리 중간까지 한쪽 보행로를 청소하고 다시 남쪽 끝으로 되돌아가야 하는데 일이 많을 땐 그냥 이렇게 건넌다”며 “어차피 차도도 내 청소구역”이라고 했다.

한강 다리의 차도 청소는 주로 노면청소차가 맡지만 작은 쓰레기까지 다 치워지진 않아 환경미화원이 수작업으로 마무리한다. 김씨는 동료 미화원 3명과 천호대교 차도를 직접 청소했다. 주변 어디에도 ‘청소 중’임을 알리는 표지판은 없었다. 흰색 안전모가 유일한 안전장치다. 시속 80∼90㎞로 달리던 차들은 이들을 발견하고 황급히 차로를 바꿔 아슬아슬하게 비켜갔다.

김씨는 “경광등 달린 차로통제차량은 주로 노면 보수 등 공사현장에 투입된다. 또 그런 차가 나오면 ‘길을 막는다’는 운전자 항의도 많아 그냥 이렇게 청소한다”고 설명했다. 차도에는 화물차에서 공사자재나 상자 같은 ‘대형 쓰레기’도 종종 떨어진다. 그는 “작은 쓰레기는 차도에 뛰어들어 금세 치우고 나올 수 있는데 합판처럼 부피가 큰 쓰레기를 치울 때는 아찔한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고 했다.

1년째 성수대교 청소를 맡고 있는 환경미화원 박모(51)씨도 “31개 한강 다리는 작업이 위험하고 공기도 나빠서 미화원 사이에 힘든 곳으로 꼽힌다”며 “탄광에서 일하는 것처럼 코를 풀면 매연 때문에 까만색 코가 나온다”고 말했다. 또 “구청마다 차로통제차량 지원이 제각각이고 대부분 1∼2대뿐이어서 청소에까지 투입하는 곳은 많지 않다”고 전했다.

환경미화원들은 온갖 궂은일에 동원된다. 교통사고나 화재 현장에는 늘 이들이 있다. 미화원 최모(45)씨는 “교통사고 잔해들은 노면청소차로 치울 수 없어서 미화원들이 직접 정리한다. 역시 달리는 차들 사이에서 작업하느라 위험할 때가 많다”고 했다. 또 “불이 나면 근처에서 작업 중인 환경미화원들에게 구청에서 연락이 온다. 경찰보다 먼저 도착해 교통정리를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다산콜센터에 접수되는 민원 중 ‘기르던 고양이가 죽었으니 치워 달라’ ‘음식물 쓰레기 좀 대신 버려 달라’는 식의 황당한 민원은 대부분 우리에게 맡겨진다”고 했다. 고된 미화원들을 더 힘들게 하는 건 사람들의 시선이다. 김씨는 “청소 중 잠깐 쉬고 있었는데 ‘놀고 있다’는 신고가 구청에 들어간 적도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성동구에서 25년간 일해 온 한 미화원은 “25년 전과 비교하면 작업 환경이 좋아졌지만 일손이 부족하다. 하루에 1인당 3㎞ 이상 청소해야 해 숨 돌릴 틈이 없다”고 했다. 서울시 환경미화원은 2559명이다. 무기 계약직인 이들은 도로와 골목길, 취약지구 청소 등을 담당하며 오전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하루 9시간 근무한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에 담당구역 청소를 끝내기가 쉽지 않아 오전 5시 이전에 출근하는 사람이 많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신상목 박세환 전수민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