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고액연금 수령자 건보료 원안대로 부과해라

입력 2013-06-05 17:28

고액의 공적연금을 받는 ‘부자노인’들이 자녀의 직장 건강보험에 피부양자로 이름을 올려 건강보험료 납부를 계속 회피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연금과 기타·근로소득(강연료, 원고료 및 일시적 소득)이 연간 4000만원을 초과하는 은퇴자들에게 5월부터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려고 했으나 전·현직 공무원들의 반발에 밀려 결국 무산됐다.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지난해 6월 입법예고된 이후 세 번째다.

복지부는 날로 악화되는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지탱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고액연금 수령자를 직장인 피부양자 범위에서 제외해 지역가입자로 돌리려 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부처별 협의 과정과 지난 2월 규제개혁위원회 심사에 이어, 지난달 법제처 심사과정에서도 공무원들은 복지부 개정안에 강력히 저항했다. 공무원연금 담당부처인 안전행정부와 군인연금 담당부처인 국방부가 해당 공무원들의 반발을 반영해 반대한 것이다.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연 4000만원의 연금 소득자가 월평균 18만4000원의 건보료를 내게 된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공적 연금 수령자 가운데 지역 건강보험료 부과대상의 범위를 다소 축소한 내용으로 후퇴한 개정안을 재추진해 7월부터 시행키로 했다. 수정안은 직장 피부양자 제외기준을 ‘연금소득과 기타·근로소득이 연 4000만원 이상’에서 ‘연금소득의 50%가 연간 2000만원 이상, 또는 기타·근로소득이 연간 4000만원 이상인 경우’로 조정 했다. 이 경우 건보료 부과대상은 2만2000명에서 2만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시민단체들은 원래 방안대로 시행하라며 반발하고 있다.

원래 개정안대로 통과된다 하더라도 부과대상 2만2000명은 전체 공무원·군인·사학연금 수령자 약 36만9000명 가운데 6%에도 못 미친다. 이들은 현역시절 국장급, 장성급 등으로 명예와 권력을 누렸고, 노후생활도 여타 노인 평균 수준보다 훨씬 더 윤택한 편이다. 퇴직자의 연금도 엄연한 소득이다. 건보료는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소득세와 비슷한 성격을 지닌다. 게다가 연 4000만원의 노후소득은 현역근로자 평균 연봉과 맞먹는 수준이다.

복지부는 그간 직장인 피부양자의 무임승차를 막기 위해 2000년 7월 사업 소득이 있는 경우, 2006년 12월엔 연간 금융소득 4000만원 이상인 경우, 2011년 7월엔 재산 과표 9억원 이상인 사람들을 피부양자에서 제외했다. 일반 국민에게는 부과대상을 계속 확대하는데, 공적연금을 받는 소수의 고액 소득자에게 예외를 허용하는 것은 누가 봐도 형평에 어긋난다. 국가에 기여하기도 했지만, 국가의 혜택도 누구보다 많이 받은 전·현직 고위공무원들이 건강보험에는 자기 몫의 기여를 하지 않으려는 것은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