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포괄수가제, 뭐가 문제인가

입력 2013-06-05 17:42


“포괄수가제도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잘만 운용하면 현행 행위별 수가제로 인한 폐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봐요. 정부가 포괄수가제 확대 적용 정책을 계속 밀어붙이는 것은 보험진료비 지불 규모를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통제하고, 과잉진료를 막아 파산 위기의 보험재정을 보호하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닐까요?”

서울에서 중소 규모 산부인과병원 두 곳을 20년 이상 운영해 온 중견 산부인과 전문의 Y박사의 의견이다. 그는 다음달부터 대학병원 위주의 종합병원 이상 상급종합병원까지 확대 실시되는 포괄수가제 도입을 오래전부터 지지해 온 인물이다.

그의 얘기에 더 관심이 가는 이유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복강경수술 잠정 중단이란 카드를 꺼내드는 등 대부분 포괄수가제 위주의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에 대해 반발하고 있는 것(국민일보 5일자 8면 참조)과 대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뜻이 맞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소수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포괄수가제란 제왕절개수술은 얼마, 백내장수술은 얼마 하는 식으로 보험진료비를 정액화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받지 않게 하는 진료비 지불 제도다. 누구한테 어떤 치료, 무슨 검사를 받았는지는 따지지 않는다. 특정 질병으로 치료받는 환자들은 모두 검사 횟수 및 처치 수단은 물론 입원일수와도 상관없이 같은 비용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현행 행위별수가제는 진찰료, 검사료, 처치료, 입원료, 약값 등 환자가 받는 의료 서비스의 가격을 각각 따로 매겨놓고 총 시술 횟수를 곱해 최종 부담 비용을 산정하는 방식이다.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산 물건에 대해 적당한 값을 지불하는 것처럼 환자가 받은 의료 서비스만큼 계산해서 상당 비용을 내도록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일견 아주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이 제도에도 문제점은 있다. 바로 진료수입 증가를 노린 과잉진료를 막기 힘들다는 점이다. 정부가 물가 인상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 해마다 의료수가 인상을 최대한 억제하자 안 해도 될 검사와 처치를 늘리는 편법으로 감소분을 보전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게 그 증거다.

Y박사는 그 폐해를 의사인 자신도 얼마 전 직접 경험했다고 털어놨다. 어깨가 아파 정형외과병원 두 곳을 차례로 방문, ‘오십견’ 진단을 받았을 때다. Y박사는 “검사 결과는 같았는데 한 병원에선 방사선 사진 한 장만 찍은 반면 다른 병원은 스무 장도 더 찍어 기분이 나빴다”고 비판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행위별수가제 하에선 검사(촬영) 횟수를 늘리는 편법을 동원해야 진료수입을 더 늘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Y박사는 설명했다.

포괄수가제 도입은 이 같은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필요악’으로 보인다. 다양하고 복잡한 의료의 속성을 단팥빵 찍어내듯 포괄수가제라는 틀 하나에 포용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왕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하는 김에 다른 질환도 함께 치료하는 동시수술을 비롯해 신의료기술 도입에 따른 비(非)급여 인정 범위 등에 대한 불만이 벌써부터 일선 병의원들로부터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으로 짐작된다.

포괄수가제가 제대로 효과를 보기 위해선 정부(보험자)와 의료인, 환자 등 이해 당사자가 수시로 만나 소통하며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의사들의 주장처럼 정부가 책정한 수가가 원가에도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라면 과감하게 현실화해주는 정책적 배려도 필요해 보인다.

왜냐하면 포괄수가제가 의료의 질을 저하시키는 빌미가 되기보다 대(對)환자 서비스 경쟁이 촉진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보는 까닭이다. 의료 서비스 제공에 따른 원가 절감은 의사들의 이익을 키우는 기회일 수 있겠지만, 환자들 입장에선 같은 값에 서비스가 더 좋은 병원과 의사를 가려내는 기회가 될 게 분명하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