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칼렛 핌퍼넬’ 여주인공 바다 “이 역할은 제게 운명이에요”

입력 2013-06-05 17:38


바다(본명 최성희·33)를 얘기할 때 ‘S.E.S’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원조 여성 아이돌의 메인보컬, 1997년 데뷔한 17년차 가수.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10대에 이미 연예계의 달콤함을 한껏 맛본 그는 요즘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최근 KBS 2TV ‘불후의 명곡’ 이승철 편에 미국 팝가수 비욘세를 연상시키는 힘 있는 무대를 선보이며 ‘바다, 아직 살아있네’라는 감탄을 자아냈다. 1년 정도 휴식기를 가졌던 바다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쉬면서 고르고 고른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의 여주인공 마그리트 역으로 7월 6일 관객과 만난다.

뮤지컬이 올려질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4일 그를 만났다. 평소의 밝고 긍정적이고 발랄한 모습 그대로였다.

미국 브로드웨이 초연 16년 만에 한국 무대에 오르는 ‘스칼렛 핌퍼넬’은 올 하반기 최대 기대작 중 하나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낮에는 화려한 한량 영국 귀족 ‘퍼시’로, 밤에는 프랑스 공포정권의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구출하는 비밀결사대의 수장 ‘스칼렛 핌퍼넬’로 활동하는 두 얼굴의 영웅에 관한 이야기다. 헝가리 출신 영국 작가 바로네스 오르치(1865∼1947)의 동명 소설이 원작. ‘지킬 앤 하이드’의 미국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초기작으로 ‘조로’ ‘맨 오브 라만차’의 미국인 데이비드 스완이 연출을 맡았다.

바다는 이 작품에서 변질되는 혁명과 폭력이 난무하는 도시에 환멸을 느끼는 프랑스 여배우 마그리트 역을 맡았다. 극장은 혁명재판소의 명령으로 폐쇄되고, 그는 퍼시와 결혼해 조국을 떠난다. 하지만 혁명세력의 권력자이자 옛 연인인 쇼블랑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공백기에 대해 먼저 물었다. 아픔을 극복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2011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를 할 때였다. 매일 무대에 올라야 하는 바쁜 일정 때문에 임종을 지키지 못했고, 그 일은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다. 어머니는 막내딸에게 사랑을 듬뿍 주셨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금발이 너무해’ 중에 “하버드에 붙었어. 엄마 딸 해냈어”라는 대사가 있는데 이 얘기를 할 때마다 엄마 생각에 눈물을 참았어야 했어요.”

이후 대외활동을 중단하고 주변 정리를 했다. “쉬면서 진짜 좋은 작품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칼을 갈았죠. 이 작품은 저에게 운명이에요. 아마 제 인생에 가장 뜻 깊은 작품이 될 듯합니다.”

그가 생각하는 마그리트는 이상을 꿈꾸는 박애주의자다. “귀족의 부패, 부당한 권력에 대해서도 할 말은 하는 사람이죠.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감정에 솔직하고, 결단력도 있죠.” 바다는 이 역할이 자신과 닮은 것 같아 감정이입이 잘 된다며 웃었다.

‘S.E.S’로 데뷔했지만 안양예고 재학 시절 그의 꿈은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코카서스의 백묵원’(브레히트 작품)의 주역에 발탁되지 못했다는 실망감에 며칠 밤 끙끙대며 속상해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학창 시절의 꿈을 이룬 건 10년 전 뮤지컬 ‘페퍼민트’(2003)에 도전하면서다. 아이돌 가수 출신 뮤지컬 배우 1호라는 기록도 세웠다.

“고교 때는 연극에 심취해 있었죠. 지금도 그때의 순수한 마음이 남아있어요. 연극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무대 공포증도 없고요. 무슨 역할이든 성실하게 해내자고, 그게 작품에 대한 의리라고 생각했던 게 뮤지컬 무대에서 롱런할 수 있었던 이유 같아요.”

그는 “뮤지컬 배우로서 다작을 할 생각은 없다. 일 년에 한두 편이 딱 좋은 것 같다. 욕심 부리지 않고, 책임감 있게 천천히 한 걸음씩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또 “가수든 배우든 그 무대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면 족하다”며 “올가을, 밝은 느낌의 정규 음반을 낼 예정”이라고 전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