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남호철] 카시롤라
입력 2013-06-05 17:42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에서 축구 경기 못지않게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있다. 공식 응원도구인 전통악기 ‘부부젤라(vuvuzela)’가 그것이다. 남아공 최대 부족인 줄루족이 부족들의 사냥을 독려하는 피리에서 유래됐다는 이 길쭉한 나팔은 2000년대 플라스틱 소재로 대량 생산되며 응원도구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끼리 울음소리와 닮은 부부젤라 소리는 최대 144데시벨(㏈)로 전기톱(100㏈), 잔디깎이 기계(90㏈)는 물론 기차(110㏈)보다 더 시끄럽고 제트엔진이 내는 소음(150㏈)과 맞먹는다. 남아공의 소음 안전 기준에 반경 2m 이내에서는 1분 이상 노출돼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고, 부부젤라 소음이 축구선수들의 청력에 손상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외국인들의 비난이 이어졌고, 경기에서 또 하나의 적이 부부젤라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당시 부부젤라를 금지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국제축구연맹(FIFA)과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퇴출시키지 않았다.
2014년 열리는 브라질월드컵 공식 응원도구 ‘카시롤라(caxirola)’가 지난 4월 초 공개됐다. 부부젤라가 귀청을 때리는 소음으로 원성을 사자 그 대체품으로 아프리카 전통악기 ‘카시시(caxixi)’를 본떠서 만들어진 것이다. 브라질 예술가 카를리뇨스 브라운이 초록색과 노란색을 섞어 고안한 이 악기는 쿠바 리듬악기 마라카스와 비슷하게 생겼다. 손에 쥘 수 있는 크기에 흔들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부부젤라에 비해 소리가 부드럽고 소음도 덜할 뿐 아니라 옥수수 찌꺼기를 활용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친환경적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출시 2개월도 못돼 지난달 말 사용금지 결정이 내려졌다. 부부젤라처럼 소리가 문제된 것은 아니었다. 성난 축구팬들이 경기장으로 집어던지면서 경기에 방해되는 것은 물론이고 선수들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4월 28일 브라질 북동부 살바도르 폰테노바 아레나에서 열린 바히아와 빅토리아 간 경기에서 빅토리아가 2대 1로 승리하자 성난 바히아 팬들이 경기 시작 전 배포된 카시롤라를 경기장에 마구 집어던진 것이 발단이 됐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카시롤라가 부부젤라보다 한 수 위”라고 자랑했지만 엉뚱하게 사용되는 바람에 빛도 보기 전에 퇴출되는 불운을 당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남호철 논설위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