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꽃집 주인, 법원에서 분신소동… 왜?

입력 2013-06-05 14:34

[쿠키 사회] 50대 꽃집 주인이 법원에서 난데없는 분신소동을 벌였다.

단골 거래처 명단을 몰래 인출해간 경찰관 부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패소한 게 너무 억울하다는 주장이다.

5일 오전 10시쯤 광주 지산동 광주고법 현관 앞에서 김모(54)씨가 갑자기 자신의 1t 화물트럭 적재함에 올라가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김씨는 기름을 담은 생수통과 휴대용 점화기를 양손에 든 채 “법원 판결이 잘못된데 항의해 분신자살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원에서 5㎞쯤 떨어진 광주 운림동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김씨는 이날 붉은 페인트로 “너무 억울합니다”라고 쓴 문구와 함께 소송사건의 일련번호가 적힌 2m 크기의 현수막을 트럭에 내걸었다.

화물 적재함에는 기름통 2개도 따로 싣고 있었다.

김씨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연은 2011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씨는 당시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이모(45·여)씨를 꽃집 직원으로 채용했다. 이씨는 이후 6개월 동안 김씨의 꽃집에서 일을 배우면서 거래처 명단 등 영업 관리도 맡았다.

이듬해 4월 꽃집을 그만 둔 이씨와 한 때 월급을 주면서 한솥밥을 먹던 김씨의 우호적 관계는 1년쯤 흐른 지난해 5월 이씨가 20여m 떨어진 곳에 다른 꽃집을 내면서 앙금이 생겼다.

수년간 거래를 유지해온 단골 고객이 하나 둘씩 이씨의 새 꽃집과 거래를 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씨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김씨는 이씨가 자신의 꽃집에서 일하면서 손에 넣은 고객명단과 연락처를 밑천삼아 이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였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매출이 갈수록 떨어지자 김씨는 가까운 곳에 새 꽃집을 차린 이씨가 얄밉게 느껴졌고 고민 끝에 이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제기했다. 이씨와 그의 경찰관 남편이 영업비밀 침해 등 불법행위로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며 2000만원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낸 것이다.

하지만 사건을 담당한 광주지법 민사5단독 조형호 판사는 지난 4일 김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고객명단 등은 영업활동을 통한 성과물이지만 자유 경쟁시장에서 비밀로 유지된다거나 원고인 김씨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정보로 보기는 어렵다”고 기각사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또 “설령 영업비밀에 해당되더라도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이씨가 김씨의 영업정보를 침해해 불법행위를 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자신을 배신하고 새 꽃집의 문을 연 이씨의 남편(49)이 광주경찰청 정보과에 근무하는 경찰관이라는 점도 거슬렸다. 이씨와 매출경쟁을 벌이던 김씨는 이날 “광주경찰청 정보관인 이씨 남편을 반드시 정복을 입혀 법원으로 불러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무더운 초여름 날씨 속에 1시간20여분동안 소동을 벌이던 김씨는 출동한 경찰특공대의 설득에 못 이겨 스스로 트럭에서 내려왔다. 김씨는 스스로 분신소동을 거두면서 “이제 할 만큼 했다”며 읊조린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분신소동을 벌이기 위해 법원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화분을 트럭에 싣고 들어와 정문을 통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을 지키던 청원경찰 등이 축하 화분을 배달하러온 줄 알고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소방차 2대와 구급자 1대를 현장에 긴급 배치했다.

하락하던 매출을 법으로 막아보려던 김씨는 분신소동에 따라 법의 처분을 다시 기다려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경찰은 김씨를 연행해 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입건할 방침이다.

광주=국민일보 쿠키뉴스 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인기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