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손 김병주 교수가 회고하는 소설가 김동리… “늘 어렵고 무뚝뚝하셨던 할아버지…”

입력 2013-06-04 18:56 수정 2013-06-04 10:42


“장손이라고 나름 저를 예뻐하셨다지만 늘 어렵고 무뚝뚝한 할아버지의 존함 ‘김동리’ 세 글자는 제게 가깝고도 먼 이름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접한 거의 대부분의 문고판이나 아동서적 등의 뒤표지마다 편집위원 혹은 감수위원이라는 이름으로 할아버지의 성함을 발견하는 것이 신기하고도 당연하던 시절이었지요.”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소설가 김동리(1913∼1995)의 장손 김병주(43) 서울교육대 교수가 할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무뚝뚝한 느티나무, 나의 할아버지 김동리’라는 제목으로 계간 ‘대산문화’ 올 여름호에 소개했다. 김병주 교수는 김동리가 1938년 진주사범 출신의 교사 김월계와 결혼해 얻은 아들 5형제 가운데 장남 재홍씨의 맏아들이다.

그의 기억에 새겨진 할아버지는 보수적이고 무뚝뚝한 경상도 특유의 기질을 가졌지만 훗날 부모가 들려준 할아버지의 정감 넘치는 몇 마디는 그의 뇌리 속에 남아있다. “무뚝뚝한 할아버지께 옆에서 ‘손자가 할아버지 닮았어요’ 하자, 비로소 ‘그래, 내 닮았다’ 하며 대꾸하시고 제 팔다리와 골격을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제 어머니께 그러셨답니다. ‘니는 얘 하나면 아무 걱정 없이 잘 살겠다.’ 아마도 첫 손주를 맞은 쑥스러움에 던진 그 한마디는 당신 나름의 칭찬이자 덕담이셨겠지요.”

할아버지가 집안의 돌림자를 거부하고 원래대로라면 ‘∼장’이 됐어야 할 14명의 손주들에게 새로운 돌림자로 ‘병∼’을 작명해주었다는 이야기며 중앙대 학장으로 재직하던 할아버지를 찾아가 회전의자에 앉았던 유년 시절의 기억은 병주씨에게 진하게 배어 있는 할아버지의 체취가 아닐 수 없다. 한번은 병주씨가 두어 달 할아버지의 신당동 집을 찾아가지 않자 할아버지가 병주씨가 다니던 학교에 전보를 보냈고 담임선생님이 수업 중에 불러내 전해주기도 했다.

“이미 전화도 많이 보급되어 있었던 80년대 초반의 그 허망한 ‘전보 소동’은 제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아본 전보이기도 했습니다. (중략) 제가 대학을 들어가던 겨울, 여성 소설가이던 손소희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지요. 장례를 치르면서 제가 모르던 할아버지의 의외의 모습을 목격했던 기억이 납니다. 입관 때 할아버지께선 할머니의 책 몇 권을 함께 넣으면서 그 책에 이렇게 쓰셨습니다. ‘잘 가오, 내 사랑.’ 아마도 평생 처음으로 곁에서 본 할아버지의 로맨틱한 소설가로서의 모습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할머니 손소희는 김월계와 이혼한 김동리의 두 번째 부인이다.

김동리가 드리운 그늘 아래 손주들도 성장했고 한국 문학도 성장했으니 한 그루 느티나무의 넉넉한 품이 느껴지는 회상기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