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굴릴데 마땅찮아…” 해외부동산 사들이는 금융사들
입력 2013-06-04 18:43 수정 2013-06-04 22:32
국내 금융회사들이 미국 영국 중국 등 세계 각지의 노른자위 땅을 경쟁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은 데다 저금리 상황이 길어지면서 마땅히 돈 굴릴 곳을 찾지 못하고 있어서다. 해외 부동산 투자는 국내에서보다 높은 임대료를 꼬박꼬박 챙길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 집주인 행세를 하는 만큼 국내 기업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금융위원회는 영국 런던의 오피스(상업용) 빌딩에 투자하기 위해 자회사를 설립하도록 허락해 달라는 삼성생명의 요청을 최근 받아들였다고 4일 밝혔다. 삼성생명은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 있는 영국령 채널 제도의 저지섬에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를 만들어 영국 런던의 대형 빌딩을 싱가포르투자청(GIC)으로부터 5735억원에 사들일 예정이다.
저지섬은 요즘 한창 구설에 오르는 조세피난처 중 하나로 세금이 거의 없다. 런던의 건물을 삼성생명이 직접 사면 매수가의 4%인 약 230억원을 취득세로 내야 한다. 하지만 저지섬의 페이퍼컴퍼니가 사면 약 10억원의 인지세만 내면 된다.
삼성생명이 이번에 사들이는 빌딩은 대지 4046㎡(약 1224평)에 연면적 3만7421㎡(1만1320평) 규모로 런던 안에 있는 금융 중심지 ‘런던시티’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빌딩은 현재 독일 코메르츠방크의 영국 본사로 사용되고 있는데 국내 금융회사가 사는 해외 부동산 중에선 최고가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갔던 해외 부동산은 미래에셋그룹이 2006년 중국 상하이 푸둥에 건립한 미래에셋타워(약 3400억원)였다.
또 삼성생명은 2011년 중국 정부로부터 낙찰 받은 베이징의 상업용지에 올해 안으로 건물을 올릴 계획이다. 이 사업에 들어갈 돈은 75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금융회사들이 해외 부동산 시장의 ‘큰손’으로 나서는 것은 국내에서의 수익률이 낮기 때문이다. 특히 보험사들은 자산을 이리저리 굴려 내는 수익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국내 보험사의 평균 자산운용 수익률은 3%대다. 업계 1위 삼성생명의 지난해 자산운용 수익률은 상대적으로 높은 4.3%를 기록했지만 2년 전(5.8%)과 비교하면 1.5% 포인트나 하락했다. 이 때문에 보험사들은 고객에게 약속한 돈을 돌려주고 나면 오히려 손해가 나는 역마진 우려까지 나온다.
해외 부동산으로부터 나오는 수익은 짭짤하다. 삼성생명이 조만간 집주인이 되는 런던 건물의 임대 수익률은 연 5.2%로 서울 강남의 오피스 빌딩보다 2∼3% 포인트 높다.
업계 2위인 한화생명과 현대해상 등이 인수를 추진 중인 독일 프랑크푸르트 갈릴레오 빌딩의 배당 수익률은 6%대 초반이다. 건물 매입 금액은 약 2000억원이다. 한화생명은 지난해 10월 한화손해보험과 함께 영국 런던의 국제법률회사 에버세즈 본사를 약 2500억원에 사들이기도 했다.
업계 3위인 교보생명도 국내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주로 투자하던 방식을 틀어 해외 부동산 투자 등을 위한 대체투자전문 자산운용사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래에셋그룹도 최근 호주 시드니의 관광 명소 오페라하우스가 내려다보이는 포시즌 호텔을 인수하는 등 해외 부동산 투자에 적극적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해외 부동산 투자는 안정적으로 현금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라며 “지금 같은 국내 상황에선 자산운용 방식을 다변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