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쪽지 토크 합시다”… 이정현式 소통 행보

입력 2013-06-04 18:07 수정 2013-06-04 22:35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박근혜 대통령의 ‘입’으로 복귀하자마자 춘추관(청와대 기자실)을 발칵 뒤집어놨다. 출입기자들이 박근혜정부 출범 후 100일 동안 경험하지도, 예상하지도 못했던 파격 제안을 쏟아내면서다.

정무수석이었던 그는 홍보수석으로 자리를 옮긴 다음날인 4일 오전 10시쯤 춘추관을 찾았다. 전날 임명 직후에 이어 두 번째다. 이남기 전 홍보수석이 지난달 22일 사표가 수리될 때까지 모두 여섯 차례 기자실을 찾은 것과 비교하면 그 자체가 ‘파격’이다.

이 수석은 우선 ‘일일 목욕탕 토크’를 제안했다. 지난 대선 때 ‘사랑방’이라는 명칭으로 현안을 놓고 문답을 주고받았던 기자간담회와 유사한 형식이다. 그는 “오전에 씻기도 해야 하고 청와대로 오면서 여러 가지 조율할 것이 많아 기자들 전화를 다 받을 수 없다”며 “새벽에 춘추관 지하 목욕탕에서 출근한 기자들과 간단히 얘기하면서 언론이 청와대에 대해 궁금한 게 뭔지 들어볼 생각”이라고 했다. 언론과 ‘알몸’으로 격의 없이 만나 소통하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그러나 “여기자들은 소외되는 것 아니냐” “새벽에는 출근한 기자도 별로 없다”며 오히려 기자들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이 수석은 “목욕은 청와대 경내에서 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대신 오전 7시20분쯤 기자실에서 간담회를 갖는 것으로 정리했다.

이 수석은 “언론과 접촉은 매일 하겠다”며 “제가 씻을 때, 회의할 때 빼고는 언제든 전화를 받겠다. 만나야 할 때 만나고 연락해야 할 때 연락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후 청와대 회의가 끝나고 또 한번 기자실에 들러 언론의 관심사에 대해 백브리핑 형식으로 알려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전임 홍보수석 시절 ‘청와대 관계자’를 출처로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해 논란이 됐었지만, 이 수석은 “‘고위 관계자’라는 표현은 자제해주셨으면 좋겠지만 ‘관계자’라고는 쓰셔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수석은 “미국은 대통령과 인터뷰가 직접 안 되기 때문에 궁금한 점을 쪽지를 붙여놓더라. 우리도 쪽지를 남겨주면 수시로 체크해보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홍보수석실 직원들은 기자들이 질문지를 붙일 수 있도록 즉각 게시판을 마련했다.

출입기자들은 이 수석의 ‘시도’에 대체로 호평을 보냈다. 청와대가 적극적인 소통 노력을 보인 것 자체가 신선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이 수석이 박심(朴心·박 대통령의 마음)을 꿰뚫고 있을 것이라는 신뢰도 깔려 있다. ‘구원투수’로 등판한 이 수석이 박 대통령의 발목을 번번이 잡았던 불통(不通) 논란을 해소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