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성태윤] 나눔에서 회복으로
입력 2013-06-04 17:46
장기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물론 경제성장이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국가에선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감소하거나 성장이 정체돼 일자리 창출에 비상이 걸렸다.
우리도 ‘고용률 70%’ 달성이 주요 국정과제로 등장한 상태이다. 경기침체는 국제적으로 공통되게 나타나지만 일자리 감소폭은 개별 국가마다 크게 다른데, 그중에서 독일은 ‘고용 기적’이라 지칭될 정도로 비교적 양호한 성과를 거두고 있어 참고할 필요가 있다.
기업이 고용을 변화시키는 데는 크게 ‘외적조정’과 ‘내적조정’ 방식이 있는데, 글로벌 위기에서 독일이 고용과 관련해 양호한 성적을 보이는 것은 특히 내적조정을 효과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외적조정은 한마디로 상황에 따라 해고하거나 신규 채용하는 것이고, 내적조정은 기본적으로 일하는 시간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경기침체 상황에서 어려움에 처한 기업이 근로자를 해고할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근로시간을 줄여 대응하는 것이다. 해고의 경우 그 부담이 해고된 사람에게 지나치게 집중되고, 해고 이후 이들이 급격하게 소비를 줄임으로써 경기회복에도 장애가 될 수 있다. 즉,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해고가 최선의 선택이지만 경제 전체로 보면 수요를 감소시켜 경기불황을 지속시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해고되는 사람을 줄임으로써 경제 전반의 실업자 급증을 막으면서도, 기업은 생존할 수 있도록 임금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일종의 ‘나눔’ 개념을 생각할 수 있다. 다만 단순히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이해관계를 고려한 정교한 ‘나눔’이다.
실제로 통상적인 ‘일자리 나눔(job sharing)’이 고용창출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연구는 여럿 존재한다. 그렇다면 독일의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나눔’이 비교적 효과적이었다고 평가받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그것은 경제적 이해관계를 고려한 정교한 제도설계가 있었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대표적인 예가 근로시간 계좌제도(working time account)와 조업단축제도(short-time work)이다.
근로시간 계좌제도는 일정 기간 동안 단체협약에서 맺은 근로시간보다 적게 또는 많게 일할 수 있도록 한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선 탄력적으로 근로시간을 정함으로써 보다 유연하게 경기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고, 근로자의 입장에선 초과근로수당을 일정 부분 포기하는 대신 고용 및 소득의 안정성을 높인다.
조업단축제도는 기업이 근로시간 계좌제도와 같은 수단을 모두 사용하고도 고용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조업단축을 실시하고 이에 따른 임금손실은 정부가 일부 보상해 주는 제도이다. 조업단축제도 역시 근로시간 계좌제도와 마찬가지로 근로자에게는 고용안정을 제공하되 기업은 보다 유연하게 경기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한다. 다만 근로시간 계좌제도와의 큰 차이는 보조금 형태로 정부지출이 투입되는 점이고, 이 때문에 일종의 최후 수단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정부지출이 투입되지만 해고 이후에 지급해야 하는 실업급여에 비해서는 부담이 적도록 설계되어 정부 입장에서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따라서 일상적으로 이용하기에는 근로시간 계좌제도가 부담이 적지만,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조업단축제도 역시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결국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익을 독식하거나 부담을 전적으로 져야 하는 상황을 방지하고 근로자·회사·정부 모두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일정 부분 부합되도록 정책을 설계함으로써 ‘나눔’의 방식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제도화하는지가 ‘나눔’이 경기회복을 위한 실제 정책으로 성공하기 위해 중요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성태윤(연세대 교수·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