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블랙아웃 한 방에 날리자

입력 2013-06-04 17:46

집안 살림의 수입과 지출을 적는 장부가 가계부(家計簿)다.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던 우리네 어머니들 중에는 가계부를 꼼꼼히 적은 이들이 적지 않았다. 수입은 턱없이 적은데 건사할 식구가 많은 어머니로서는 한 푼이라도 절약해야 했다. 어머니들은 지출을 줄이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가계부 작성이라고 체득했다.

수십년간 작성한 가계부가 생활의 변화를 돌아보는 소중한 자료임은 말할 것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가계부 작성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불필요한 지출을 막기 위해 결산을 잘하고 실천하는 자세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가계부는 노트형에서 엑셀형으로 변했다. 엑셀형은 주·월·연간 통계를 비교·평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젠 스마트형이 엑셀형의 자리를 떡하니 차지한다. 스마트폰으로 앱을 내려받아 가계부를 작성하면 카드사용·통장 입출금 내용 등이 자동으로 등록될 만큼 편리하다.

가정에만 가계부가 있는 건 아니다. 엊그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가계부가 나왔다. 국정과제를 실천하기 위한 134조8000억원의 지출 항목과 재원조달 방안을 담은 내용이다. 공약가계부의 적정성과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대선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구체적인 재정계획을 내놓은 점은 평가할 만하다.

가계부와 공약가계부의 공통점은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여 비용 대비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직면한 대정전(블랙아웃)을 막기 위해서는 가계부의 효용을 원용할 필요가 있다. 다달이 각 가정에 배달되는 한국전력의 전기요금청구서가 단초를 제공한다.

청구서에는 각 가구의 전기 사용 내역이 소상히 적혀 있다. 가구의 이달, 전월, 전년 동월, 연평균 전기사용량은 물론 해당 시군구의 전년 동월 평균 전기사용량까지 수치와 그래프로 비교해 보여준다. 각 가구의 전기사용량이 시군구의 평균 대비 10% 초과, ±10% 이내, 10% 미만일 경우 다른 색깔의 막대그래프로 표현한다. 그리고 전기사용량이 많다, 평균이다, 절약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전력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것으로 우려되는 오는 8월 전국 1388만 가구(2010년 기준)가 각각 전기사용량을 시군구 평균보다 10%가량 줄이면 200만 가구 이상이 한 달간 사용할 수 있는 전기가 절약된다고 한다. 올 여름에는 자신이 속한 시군구의 평균 전기사용량을 넘지 않도록 노력하자. 블랙아웃을 한 방에 날릴 수 있다. 기업체의 감산도 줄일 수 있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