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목소리] 無主空山에서 봄을 보내며
입력 2013-06-04 17:45
신록이 내 가슴에 들어와 모든 것을 치유했다는 이양하 선생님의 신록예찬을 음미하는가 했더니 어느새 계절은 여름으로 내달려 버렸다. 따뜻한 빗방울이 산을 깨워 번지던 숲안개와 젖은 신초(新草)들의 비린내, 가냘픈 꽃대를 깃발처럼 흔들던 바람꽃과 미풍에도 소나기를 내렸던 꽃비(花雨)들, 그리고 가장 표현하기 어렵다는 파스텔 톤의 신록, 이런 것들을 다시 보려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니. 각박한 세상에서 감성이 달라져 있을 내년을 기약하기 두렵다.
무심코 올라선 산 끝에서 다시 그런 봄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라도 산에 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시간의 설악산 지리산 등 금수강산의 21개 백미(白眉), 국립공원이 그런 곳이다. 잔설이 물러간 자리에 한 줌의 흙 속에서, 한 뼘의 양지에서, 한 점의 싹눈에서 새록새록 부풀어 오르는 또 다른 봄의 세계가 나른하게 몸을 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왜 산으로 가는가. 그곳은 무주공산(無主空山)이다. 즉 주인 없이 텅 빈 산이다. 누구라도, 어떤 미생물이라도 그곳의 주인이 되어 온갖 번뇌와 시름과 절망을 내려놓고 새로운 희망과 꿈과 자유를 채워 다시 세상으로 내려서게 하는 것이 산이다. 그러나 늘 산으로 출근하는 나와 같은 공원관리자가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라고 자연으로부터 꾸지람을 듣는다는 것은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봄이 늦게 왔다가 후딱 지나가는 것처럼, 자연 역시 본래의 모습이 많이 퇴색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도한 이용과 훼손, 생태계 단절과 파편화, 도시로부터의 환경영향, 기후변화에 대한 취약성 등이 주된 이유다.
거창한 보호정책이 아니더라도 자연을 배려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정해진 길로만 다니기, 정해진 장소 밖에서 취사와 야영 하지 않기, 정상 정복보다는 자연체험 방식으로 이용하기, 생태탐방 실천하기, 그리고 남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의견을 표시하는 건강한 문화가 필요하다.
자연이 기후변화라는 이름으로 역습을 한다 해도 그것은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친절한 경고’이지 아직은 최후통첩이 아닐 것이다. 새삼 노자의 도법자연(道法自然), 즉 세상의 큰 이치를 행하려면 자연을 따르라는 말을 되새겨본다. 레이첼 카슨이 경고했던 ‘봄은 왔지만 침묵의 봄이다’라는 단계를 넘어 봄 자체를 보기 힘든 날이 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다. 우리 모두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절감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신용석(국립공원공단 생태탐방연수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