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한연희 (3) 형·아우 아홉을 가슴으로 받아들인 큰아들 명곤

입력 2013-06-04 17:19


2005년 4월, 우리집 장남 명곤이가 침례를 받았다. 나이에 비해 마음고생을 많이 하고 자란 아들이라 그런지 더 감격이 컸다. 평소 아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고 싶었는데 이제 그 소원을 이룬 셈이다.

동생이 생기기 전까지 평탄한 삶을 살던 아들이었다. 침례를 받기까지 24년 동안 명곤이는 참 힘든 인생을 살았다. 시부모님과 우리 부부에게 소중한 아들인 명곤이는 어린 나이에 겪기 힘든 것들을 너무 많이 경험한 것이다. 아이가 느꼈을 삶의 무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주 미안하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그만큼 명곤이에게 미안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명곤이는 1981년 팔삭둥이로 태어나 면역력이 약했다. 많은 병에 노출된 상태라 걸핏하면 응급실에 가야 했다. 특히 천식이 심해 야외활동뿐 아니라 식사도 마음껏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오직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는 기도를 하며 아이를 키웠다.

명곤이는 9살이던 90년에 갑자기 세 살 많은 형과 세 살 아래 동생이 생겼다. 형은 내 친정조카로 제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시는 걸 어린 나이에 목격해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아이였고, 동생은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였다. 사랑을 받으며 혼자 자라던 명곤이는 졸지에 형과 동생의 역할을 한꺼번에 해야 했다. 처음 본 사람을 가족으로 맞아야 하는 아이의 고통은 내 예상보다 몇 배는 더 컸다.

이를 알게 된 건 친정조카가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였다. 명곤이는 몸부림치며 괴로워했다. 평소 자기를 괴롭혀 내심 미워했는데 이 때문에 죽은 거라 생각해 죄책감에 시달린 것이다. 아들은 엄마인 내가 생각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고 상처를 받아온 것 같았다. 차마 아이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광야 같은 거친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보혈을 지나게 된 우리 아들. 세례식 때 명곤이는 눈물이 차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아들의 아픔과 고뇌를 왜 모르겠는가.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주인으로 받아들인다는 눈물어린 고백을 할 때 나를 비롯한 많은 교인들이 그 자리에서 함께 울었다.

침례 과정에서 물속에 담겼던 머리가 다시 나올 때 얼굴에 흐르던 물기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앞으로 우리 아들은 악은 그 어떤 모양이라도 취하지 않고 순결한 삶을 살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소망한다.

명곤이가 군에 입대하던 날에도 우리 부부는 어린 자식을 한 명씩 등에 업고 의정부 훈련소에 갔다. 어린 동생 때문에 안아주지도 못한 채 훈련소로 보냈다. 거대한 무리 속으로 사라지는 첫째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너무도 미안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십수년째 계속되는 어린 동생들의 소란 때문에 아기 울음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돋는다던 아들이었다. 동생들에게 질려 절대 결혼을 안 하겠다던 아들은 28세에 동갑내기 신부와 결혼해 딸 둘을 낳았다. 사회복지사가 된 명곤이는 현재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을 돌보며 씩씩하게 살고 있다.

“명곤아, 고맙다. 내가 네게 무슨 말을 더 하겠니. 내 목숨 다할 때까지 널 사랑한다. 내 태에서 나오기 전부터 너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 주님을 주인으로 맞이한 것은 네 인생 최고의 기적이야. 앞으로 너의 삶이 주의 말씀과 능력으로 정결케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