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아빠’ 입소문 난 이민구씨의 자녀교육법

입력 2013-06-04 17:29 수정 2013-06-04 22:40


아이와 놀아주는 친구 같은 아빠 ‘프레디(Friend+Daddy)’, 자연 속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스칸디 대디(Scandi Daddy) 등 자녀교육에 적극 나서는 아빠들이 대세다. 건영(22) 재원(21) 남매의 아버지, 이민구(52·KT 부장)씨는 이들보다 한수 위다. 그는 ‘대치동 엄마’와 기를 견주는 ‘대치동 빅파더’로 불린다.

“큰아들이 고2, 둘째딸이 고1 때 전북 전주에서 서울로 근무지가 바뀌었습니다. 서울로 갈바에야 아이들 교육을 위해 대치동이 제일이겠다 싶었죠.”

지난주 금요일(5월31일) 서울 여의도 본사 휴게실에서 만난 이씨는 ‘대치동’에 터를 잡게 된 이유부터 설명했다. 2008년 7월초 아이들을 데리고 대치동에 입성한 그는 전학을 시킨 뒤 학원부터 알아봤지만 쉽지 않았다. ‘정보전쟁터’를 주름잡는 ‘대치동 엄마’들 사이에서 그는 ‘고립된 섬’과 같았다고 했다. 왕초보 수험생 학부모가 어떻게 대치동의 정보 전쟁터를 접수해 ‘대치동 빅파더’로 자리잡았을까?

“대치동 빅파더란 대치동 엄마에 빗댄 것이지만 그 역할은 전혀 다릅니다. 대치동 엄마들이 정보력을 앞세워 ‘엄마주도형’ 학습을 시킨다면 대치동 빅파더는 자녀 주도형 학습이 되도록 이끌어 주지요.”

그는 빅(BIG)은 마음가짐을, 파더(FATHER)는 행동강령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녀에 대한 믿음(Belief)을 가지고, 자녀에게 영감(Inspiration)을 주고, 자녀에게 감사하는(Gracefully) 마음을 가진 아빠가 기본 조건이다. 행동강령은 자신의 관점에 치우지지 않고(Fairly) 자녀의 입장을 생각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Agreeably), 거짓 없이 진실되게(Truly), 마음을 다하여(Heartfully), 감성적으로 배려해(Emotionally) 주고, 어려움에는 강인하게(Resiliently) 행동하는 아빠다.

이씨는 대부분 육아를 엄마 몫으로 제쳐 두고 있지만, 청소년들에게는 남녀의 역할모델이 필요해 아버지의 육아참여는 필수라고 강조했다. 특히, 자녀가 공부를 잘하길 바란다면 더더욱 아버지가 나서야 한다고 했다.

“아빠는 아이에게 구체적인 진로 탐색의 기회를 줘 꿈을 꿀 수 있게 해줄 수 있습니다. 엄마가 전업주부라면 사회를 좀더 아는 아빠의 역할은 더욱 커지겠지요.”

그는 ‘대치동 엄마’는 진학지도에는 전문가일지 모르지만 진로지도를 통해 꿈을 갖게 하는 데는 ‘대치동 아빠’가 힘이 더 세다며 하하 웃었다. 자녀가 꿈을 갖게 되면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기주도적인 진짜 공부를 하게 된다는 것이 이씨의 주장이다.

‘아빠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알지만 시간이 없다’는 것이 보통 아빠들의 변명. 그는 하루에 5분,10분만 내서 진심으로 대화를 하고, 그도 안 된다면 출퇴근 시간에 SNS를 통한 대화를 시도하라고 했다. 자녀들과 대화를 하고 싶어도 이제껏 소원해 쉽지 않다면 아내의 도움을 받으라고 했다.

“엄마는 평소 아버지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고, 왜 바쁜지 설명을 해 자녀가 아버지에게 반감을 갖지 않도록 해줘야 합니다. 또 두 사람이 시간을 같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구요.”

엄마는 가족여행을 갈 때 자녀를 아빠 옆에 앉혀 같이 가게 하는 등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한다는 것. 아버지들에게 ‘자녀교육에 동참하라’고 다그친 그는 자녀 교육에 ‘올인’ 하는 엄마들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자신의 삶을 버리고 자녀교육에 몰입하는 부모의 희생은 아이에게 부담을 줄 뿐입니다. 부모가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 역할 모델이 되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씨는 아이들이 입시준비를 하는 동안 자녀교육 경험을 나누는 재능기부를 꿈꿨고, 요즘 이를 실천에 옮겨 강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쯤에서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빅파더의 자녀는 어떤 대학을 갔을까? 공부보다는 사진을 좋아했던 아들은 재수해서 한국관광대학 디지털관광학과, 공부를 잘했던 딸은 대전대학교 한의학과에 다니고 있다.

“아들은 사진을 계속하겠다며 그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수학 능력 시험에서 기대했던 점수를 받지 못한 딸은 원하던 대학을 가지는 못했지만 전공을 바꾸는 편법은 하지 않았지요.”

군복무 중인 아들은 월급을 고스란히 모아 제대후 그 돈으로 유럽배낭여행을 다니면서 현장을 익힌 뒤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또 ‘서울대 중위권 학과는 합격할 수 있다’는 담임교사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지방대 한의대에 진학한 딸은 꿈을 향해 순항 중이다. 시류에 휘말리지 않고 꿈을 향해 성큼성큼 내딛도록 남매를 키운 그는 딸과 함께 최근 책을 냈다. 대치동 입성기를 바탕으로 엄마보다 딱 10배인 ‘아빠 효과’를 담은 ‘공부가 즐겁다 아빠가 좋다’이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