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김유정 소설의 매력 관람객에 직접 느끼게 하고 싶어”
입력 2013-06-04 17:44
‘김유정문학촌’ 촌장 소설가 전상국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 리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고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폭한 떡시루 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1936년 김유정이 쓴 수필 ‘5월의 산골짜기’ 첫 구절이다. 일제 강점기 탁월한 이야기꾼이었던 김유정을 기리고 느낄 수 있는 장소인 ‘김유정문학촌’ 촌장인 소설가 전상국을 만난 5월의 마지막 날은 유난히 더웠다. 마침 그는 이곳을 찾은 인근 남촌중학교 독서반 학생 30여명을 복원한 김유정 생가에 앉혀놓고 열띤 강연을 하고 있었다. 부자였지만 당시 몹시도 가난했던 이웃을 생각해 지붕을 초가로 앉히고 굴뚝을 안마당에 낮게 달아 연기가 바깥으로 내비치지 않게 한 가옥 구조를 설명했다.
만난 사람=박병권 논설위원
-문학촌을 찾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느끼게 하고 싶었나.
“한 작가의 생애와 작품의 창작 비밀 및 작품세계가 실감나게 풀리는 그런 공간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모든 프로그램을 맞추고 있다. 즉 문학관이 단순히 자료나 보관하고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좀 더 역동적인 프로그램으로 관람객들을 맞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마디로 찾아온 사람들에게 작가 김유정 소설의 재미와 문학사적 가치를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특히 춘천 실레마을은 1930년대 빼어난 이야기꾼 김유정의 고향 마을이면서 작품 12편의 무대가 된, 이야기가 살아 있는 이야기 마을이라는 것을 생가 및 전시관과 실레이야기길을 돌아보는 과정에 스스로 알게 한다. 또한 실레마을이 심훈의 장편소설 ‘상록수’보다 5년 빠른 1930년에 김유정이 만 스무 살에 하향해 야학 등 농촌계몽운동을 벌였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일제강점기 농촌마을의 궁핍이 작품 속에 어떻게 그려졌는가를 작품을 통해 확인하도록 유도한다.”
-규모가 꽤 큰 데다 문학촌이라 방문객 안내가 필요할 텐데.
“김유정문학촌은 해설사 세 사람은 물론 촌장인 저를 비롯해 모든 직원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김유정 생애와 작품세계를 맞춤형으로 이야기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번 왔던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는 그런 곳이 바로 김유정문학촌이다. 난 사실 지방자치단체에서 문학관을 만들어만 놓고 공무원을 데려다 관리하는 형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자체가 만들지만 운영은 전문가인 문학인들이 하는 것이 내용도 풍부하고 영속성이 있지 않겠나.”
실제로 이곳은 여느 작가의 문학관과 달리 주말이면 2000명 정도가 다녀올 정도로 전국에서 성공한 문학관으로 알려져 다른 지자체 관계자들이 벤치마킹할 정도다. 그의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주로 어떤 사람들이 찾아오는지.
“지금도 중·고등학교 교실에서 김유정 소설이 읽히고 있기 때문에 중·고등학생 문학기행팀이 가장 많은 편이다. 물론 춘천을 찾는 관광객들이 주를 이루지만 유독 작가 김유정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알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금병산김유정등산로’나 ‘실레이야기길16마당’을 찾아오는 등산객들도 김유정 소설 제목으로 된 등산로를 걷고 난 뒤 작가의 생가나 기념전시관을 반드시 들렀다간다. 근래에는 강촌과 실레마을을 오가는 레일바이크 김유정역을 통해 문학촌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이 많아지고 있다.”
문학촌 바로 앞에 있는 레일바이크에는 이날도 관광버스 수십 대가 진을 치고 있어 관람객 유치에 보탬이 되는 것 같았다.
-촌장님이 작가로서 평가하는 김유정은 어떤 분인가.
“당대의 밑바닥 인생들의 삶을 설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준 그 능청과 시치미, 즉 작가의 모던한 소설 문장에 기가 죽는다. 지금도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그 작품이 재미있게 읽히는 이유, 그리고 현재에도 서점에서 그 책이 팔리고 있는 이유를 그 작품을 통해 계속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그 때문인가. 이곳에 왔던 사람들은 모두 나를 ‘김유정에 미친 사람’이라고 말한다. 김유정 소설의 문학사적 가치와 매력을 그 작품을 통해 비교적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아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싶은 충동이 남들에게 그렇게 비쳐졌을 것이다. 김유정 소설에는 한자어가 하나도 없다.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밑바닥 인생이었기 때문에 한자어를 쓸 필요가 없어서였을 것이다. 사실 소설은 인물 만들기 아닌가. 그는 이광수처럼 지식인이 등장하는 소설을 쓰지 않았다. ‘만무방’이나 ‘따라지’ 같은 소설을 보라. 마누라를 팔아먹는 염치없고 체면 없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는 우리말을 잘 가려 사용했다. 얼굴이라는 표현도 없다. 그런 고급스런 서울말을 당시 하층민이 알거나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얼굴을 낯짝이나 낯판대기로 표현했다.”
전 촌장은 대학원 시절 은사인 고 황순원 선생의 영향으로 고향 선배이기도 한 김유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학원 시절부터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해 김유정에 관한 책도 여러 권 출간했다. 강원대출판부에서 낸 김유정 소설선집 ‘산골나그네’는 그가 직접 소설에 나오는 옛말을 현대어로 고친 주석을 달아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문학 외에도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가 풍부한데 애초 구상은 누가 했는지.
“이곳의 모든 사업 프로그램은 작가의 작품을 있는 그대로 오픈한다는 생각에서 만들어졌다. 문학제 행사 가운데 산문백일장, 김유정소설 입체낭송대회, 김유정기억하기 전국문예작품공모, 봄·봄 동백꽃의 두 점순이 찾기, 그리고 김유정문학상, 김유정소설골든벨이나 가을 행사인 이야기대회, 그리고 작품 속에 나오는 민속놀이 등이 모두 작품과 관련된 것들이다. 김유정금병산등산로(봄봄길, 동백꽃길, 산골나그네길, 만무방길, 금따는 콩밭길)나 실레이야기길16마당을 걷다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30년대 김유정 작품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갖는다. 발상은 주로 내가 했지만 지금의 김유정 사업은 이 고장의 문화예술인들이 모두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특히 전신재, 유인순 교수 등 김유정 전문가 두 분이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다른 문학관에 비해 이곳의 특징은 뭔가.
“김유정역과 김유정농협, 김유정로, 점순네닭갈비, 봄봄양주장 등 작가의 이름을 딴 기관명이나 상호가 다른 지역의 문학관과 구별된다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이곳은 김유정의 고향 마을이면서 마을 전체가 작가의 생애 및 작품 세계와 관련된 곳이다. 2008년 김유정 탄생 100주년 행사 때 중국의 노벨상 수상작가인 모옌 등 한·중·일 3국의 대표 작가들이 이 마을을 실레이야기마을로 선포한 바 있다. 앞으로 이 마을을 이야기 산업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올 가을부터 ‘나는 이야기꾼이다’라는 전국 이야기 대회를 열 예정이다.”
이야기란 요새 말로 하자면 이른바 스토리텔링 아니겠는가. 그냥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사연과 역사가 담기도록 할 것이란 의지의 표현이라 느껴졌다. 이야기는 결국 언어로 구성될 수밖에 없는데 김유정도 우리말을 갈고 닦은 선구자 가운데 한 명이다. 더욱이 문학촌이 있는 이곳 춘천시 신동면 증리의 증자는 시루 증(甑)을 쓰는데, 하늘에서 봤을 때 이 마을이 마치 떡을 찌는 시루와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레마을이란 이름도 실레가 바로 표준말인 ‘시루’의 이곳 말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마을이름 하나에도 이야기가 담겨 있을 정도로 스토리텔링에 안성맞춤이란 뜻이다.
김유정은 한국 단편문학의 전성기를 이룬 시기에 눈부신 활약을 보여준 인물이다. 1908년 2월 12일(음력 1월 11일)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에서 팔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난 그는 외모와 달리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고 자주 횟배를 앓았다. 또한 말더듬이여서 휘문고보 2학년 때 눌언교정소에서 고치긴 했으나 늘 그 일로 과묵했다.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결석 때문에 2개월여 만에 제적처분을 받았다. 그를 더욱 유명하게 한 것은 당대 명창 박녹주에게 구애한 일. 그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향해 야학운동을 벌이며 소설의 밑그림이 될 이야기들을 모았다.
전 촌장은 “앞으로 야학 등 농촌계몽 운동을 펼친 금병의숙이나 봄·봄 등 작품의 무대가 되었던 곳을 복원하거나 정비함으로써 이야기 마을로서의 모습을 제대로 갖출 것”이라며 “지금까지 그래왔듯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만들고 즐기는 프로그램을 더 많이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춘천=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
■ 전상국 촌장은
한국문학작가상과 대한민국문학상을 동시에 받은 중편소설 ‘아베의 가족’으로 유명한 소설가.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대개 일상의 삶이 무기력할 때 문득 고향으로 떠난다. 이른바 귀향소설이다. 그 자신도 1972년 춘천에서 상경해 경희고 교사를 하다 85년 강원대 교수가 돼 고향으로 돌아왔다. ‘소나기’로 유명한 고 황순원 작가의 제자로 경기도 양평 소나기 마을 조성에도 힘을 보탰다. 김유정의 소설에 일찍부터 관심을 가지고 집중 연구한 결과 그에 관한 여러 책을 펴내기도 했다.
문학관은 작가의 모든 면을 보여준다는 원칙을 가지고 김유정문학촌을 성공적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소설 저변을 넓히기 위해 소설 저작에 관한 책을 내기도 했지만 본인은 김유정에 반한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짧고 박력 있는 문장에 독특한 의성어와 의태어를 적절하게 구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출생(73) △홍천중, 춘천고, 경희대 국문과 △1963년 단편소설 ‘동행’으로 등단 이후 ‘해바라기 시계’ ‘육아일기’ ‘불타는 산’ ‘길’ 등 다수 작품 발표 △강원대 국문학과 교수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대한민국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