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원의 기적] 선교사 자녀들의 아픔 아시나요?

입력 2013-06-03 18:07


한국은 미국에 이은 선교사 파송 2위 국가다. KWMA(한국세계선교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2만4000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다. 한국교회가 이들을 돌보고 도와야 할 부분이 여러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2006년 기아대책 파송을 받은 권혁, 전영선 선교사 부부는 2004년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쓰나미로 재산과 인명 피해를 입은 인근 국가 U국으로 향했다. 피해자들을 지속적으로 도울 지원자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벌써 7년째 권 선교사 부부가 사역하는 CDP(Child Development Program)센터는 서남아시아의 U국 수도 외곽 빈민 지역에 위치한다. 센터에 나오는 어린이들은 대부분 부모가 없어 끼니를 굶고 학교에 가지 않은 채 방치된 아이들이다. 부모가 술과 마약에 자녀를 돌볼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권 선교사 부부는 350여명의 어린이들을 돌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신들의 자녀를 돌볼 겨를은 없다.

선교지에서 가장 힘든 것은 경제적 어려움이다. 한 번은 돈이 없어 주인이 집을 비워 달라고 한 적이 있다. 이사할 집을 구하지도 못한 채 이삿짐을 싸며, 가장으로써 가족들에게 미안해 울기도 했다.

첫째 순호는 뛰어난 절대음감을 갖고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좋아했고, 초등학교 발표회 때는 편곡을 해 아이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음악을 배우고 싶어 했지만, 현지는 음악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고, 유학을 보낼 돈도 없어 포기했다. 음악 외에 수학과 화학, 언어에 뛰어난 순호는 음악에 대한 꿈은 접고 학비가 싼 오스트리아 빈 국립대 수학과에 가기 위해 준비 중이다. 권 선교사는 그마저도 도울 수 없다는 대답은 차마 할 수 없다. “부족한 금액을 채워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하고 싶어 하던 음악을 할 기회도 생기면 좋겠어요.”

오지에 나가 있는 선교사의 사정은 더 어렵다. 허영광(48) 선교사는 중앙아시아 F국에서 8년째 사역 중이다. 국가의 절반이 해발 5000m의 산간지대이고, 전 국민 750만명 중 100만여명이 러시아 노동자로 가 있을 만큼 경제적, 정치적으로 불안정하다.

허 선교사의 한국에서의 직업은 건축사였다. 그러나 ‘선교’라는 소명을 따라 총신대 선교대학원 과정을 마친 후 2006년 기아대책 파송으로 F국 땅을 밟았다. 열여섯 살, 열세 살, 한 살이 된 세 딸과 아내와 함께였다.

허 선교사 부부의 세 딸 중 둘째 소망이는 사춘기가 막 시작돼 낯선 땅에 적응하는 것도, 공부를 잘하는 언니를 따라가는 것도 버거웠다. 사역에 집중한 허 선교사 부부는 이를 미처 알지 못했다. 2008년 봄부터 소망이는 학교에서 돌아와 낮잠을 두 시간씩 자고, 살이 쭉쭉 빠졌다. 하지만 현지 열악한 의료시설로 제대로 된 검진 한번 못 받고 여름이 되어서야 한국을 방문해 병원을 찾았다. ‘갑상선 항진증’이었다.

갑상선 질환은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 갑상선 수치를 보며 약을 조절해야 하는데, 현지 의료시설이 부족해 인근 카자흐스탄에 가거나 방학 때마다 한국에 나와 검사를 받았다. 시간이 갈수록 경제적·사역적으로 부담돼 치료를 위해 소망이를 선교사자녀 특별전형으로 한국의 국제학교에 보냈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혼자 학업과 병 치료를 감당하기 버거웠고, 갑상선 질환 특성상 감정 조절이 쉽지 않아 친구 관계에도 어려움이 생겼다. 약만 하루에 5∼8알씩 꼬박 4년을 먹었다. 소망이에게도 허 선교사 부부에게도 힘든 시간이었다.

2012년 12월 31일, 갑상선 수술을 받았다. 어렵사리 수술비를 마련했지만 수술이 쉽지는 않았다. 갑상선이 보통 사람의 5배 이상 커져 호흡곤란이 왔다. 다행이 무사히 회복했지만 아프기 전의 예쁜 모습은 남아 있지 않아 속상하다.

허 선교사는 한국교회가 선교사를 보내기에 급급한 데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털어놓았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전선에서 싸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병참(보급선)’입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병참 없이 병사를 전선에 보내는 데만 급급하죠.” 그는 현 시점의 병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선교사 자녀 교육’이라고 말했다. 선교사들이 오지로 들어갈수록 자녀 교육에 대한 대안이 없다. 초등교육까지는 가능하지만, 중등교육 이상은 결국 타지로 보내야 한다. 떨어져 지내는 것도 힘들지만, 무엇보다 부모가 마음 놓고 자녀를 보낼 곳이 없다.

“항공 직항편이 없는 이곳은 오가는 데만 3∼4일이 걸리기 때문에 선뜻 찾아오는 이가 없습니다. 오지 선교사의 자녀들은 많이 외로워합니다. 부모들은 이 모든 것을 각오하고 나왔지만, 부모를 따라 나온 우리 자녀들은 늘 목마릅니다. 오지에서 사역하는 사역자들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서주형 기아대책 홍보팀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