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륜 조장 ‘동성애 소설’ 公기관 장터서 버젓이 판매
입력 2013-06-03 17:59 수정 2013-06-04 10:38
지난 2일 오후 1시 서울 광장동 광진구민센터에 여성 400여명이 ‘책’을 사러 모여든 진풍경이 벌어졌다. 한 인터넷 동호회가 이곳을 빌려 판매한 책은 모두 남성 동성커플을 소재로 한 인터넷 소설의 인쇄본들이었다. 인터넷에선 ‘동인(동성) 소설’ 또는 ‘BL’(Boy’s Love)이란 장르로 불린다.
기자가 들어가려 하자 입구에서 행사 진행요원이 신분증을 요구했다. 주민등록증의 사진과 나이를 꼼꼼히 살핀 뒤 입장을 허락했다. 신분증 검사가 까다로운 건 포르노 수준의 성행위 묘사가 담긴 책이 많기 때문이다.
두 달에 한 번씩 오프라인 장터 형태로 열리는 이 ‘동인소설 판매전’은 음지의 작품이 양지로 나오는 유일한 시간이다. 2007년부터 시작돼 이 날이 33번째 장터였다. 입장료 1000원을 내고 신분증 검사까지 거쳤음에도 작품을 손에 넣기는 쉽지 않았다. 워낙 찾는 이가 많아 상당수 책은 이미 ‘예약’돼 있었고 현장판매 수량은 금방 동이 났다.
입장객 중에는 여행가방을 끌고 온 여성들도 눈에 띄었다.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이들은 예약해둔 책들을 가방에 담기 시작했다. 한 여성에게 말을 걸자 “친구 부탁을 받고 왔다”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다른 여성은 “이렇게 책을 사다가 프리미엄(웃돈)을 받고 전달하는 중간 판매책도 많다”고 귀띔했다. 책은 철저히 현금으로 거래됐다. 여성들은 저마다 손에 두둑한 현금 봉투를 들고 왔다.
이렇게 팔리는 책은 정식 출판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작가들이 인쇄소에서 제본해 온다. 유명 작가들은 이런 판매행사를 통해 수천만원부터 많게는 억대 수익을 남긴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두 달에 한 번 판매전이 열리는데 수요가 워낙 많아서 참여 작가들은 하루 판매 수익으로 몇 달치 생활비를 충당한다”고 했다.
인기 있어 보이는 책에 손을 대려니 진행요원은 “이미 예약주문으로 판매가 끝났으니 구경만 하라”고 했다. 책을 펼치자 읽기 불편한 내용이 이어졌다. 부모님이 있는 집에서 동성인 동생과 벌이는 성행위, 가학적 성관계 등이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다. 입양한 아이, 자신이 낳은 아이를 성적 도구로 삼는 내용의 책도 있었다. 이렇게 아이들(키즈)이 등장하는 책은 ‘키잡물’이란 은어로 불렸다.
동인소설 작가와 독자들은 음지에서 움직인다. 외국에 서버를 둔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철저히 회원제로 운영한다. 회원가입을 하려면 주민등록증을 스캔해 파일로 보내야 하는 사이트도 있다. 폐쇄적으로 운영되다 보니 2010년 한 운영자가 회원들의 가입료를 챙겨 달아났지만 피해자들은 이런 사이트에 가입한 게 드러날까 두려워 쉬쉬했다.
문제는 이런 사이트의 외설적 소설이 외부로 유출돼 청소년 사이에 거래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심의·관리 기구들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간행물윤리위원회 관계자는 “출판물 요건을 갖추지 않고 제본 상태로 발행된다면 경찰이 단속할 일”이라고 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인터넷 동인소설에 대해 삭제 등의 조취를 취하고 있는데,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사이트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날 구민센터 공간에서 이런 책이 거래된 데 대해 광진구청 관계자는 “일반 동호회의 도서전시회로 알고 대관했다”며 “공공 이익에 반하는 대관은 할 수 없게 돼 있어 앞으로는 행사 내용을 미리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글·사진=김유나 전수민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