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바세나르 협약

입력 2013-06-03 19:18

네덜란드라고 하면 풍차, 튤립, 땅 일부가 해수면보다 낮은 나라 등과 같은 이미지를 떠올린다. 관광객에게 친절한 국민, 장사에 능통한 국민이라는 이미지도 있다. 이제 그 목록에 바세나르 협약으로 대표되는 노사정 3자간 사회적 협약 체제를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여야 원내대표와 정부가 최근 거의 동시에 한 목소리로 바세나르 협약을 거론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노동총연맹과 사용자연맹, 그리고 정부 사이에 1982년 체결된 바세나르 협약은 간단하게 말하면 노와 사가 각각 임금 동결과 고용안정을 주고받은 거래였다. 정부 중재로 이뤄진 이 협약의 결과는 네덜란드식 ‘유연안정성’의 확립이다, 즉 상용(풀타임) 노동자에 대한 해고는 쉽게 하되 새로운 상용 일자리로 옮기거나 ‘정규직 시간제’로 전환하는 것을 적극 지원했다. 정부는 기준 근로시간 단축,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시간제 노동자를 위한 사회보험 확대 등을 차례차례 법제화해 나갔다.

상용과 시간제 근로자 간의 차별을 금지한 일련의 법률 덕분에 최근 몇 년간 네덜란드의 시간제 근로 비중은 우리나라의 3∼4배인 37∼45%에 이른다. 더구나 이들의 95%이상이 자발적으로 시간제를 택했다. 네덜란드의 실업률은 80년대 초의 20% 안팎에서 현재 4% 중반대로 낮아졌다. 고용률 역시 80년대 초의 50%대에서 지난해 75%로 상승했다.

사회적 합의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양대 임상훈 교수는 사회적 협약은 국가경제의 위기상황에서 허약한 정부와 투쟁성이 약한 노동조합이 서로 연합할 때 주로 성사되는 ‘약자들의 협약’이라고 지적했다. 1990년대 초와 직전의 이탈리아와 아일랜드, 1998년의 한국, 그리고 네덜란드의 사회적 협약이 모두 그런 타협의 결과라는 것이다. 사회적 협약의 본질은 정부가 무한경쟁시대의 구조조정을 ‘일방주의’가 아닌 ‘사회합의주의’ 방식에 의해 추진한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말 한국노총, 한국경총과 함께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노사정 일자리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이를 사회적 협약에 값하는 것으로 보는 이는 별로 없다. 고임금을 양보해야 하는 민주노총이 빠지기도 했지만, 조직률이 10%에 불과한 노조만이 아니라 비정규직과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당사자도 참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정부와 노조가 약자인지는 불분명하지만, 혼자서는 결국 약자일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인식을 갖고 대화 테이블을 새로 짜야 한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