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방열] 한국교육 패러다임 바꿔야

입력 2013-06-03 19:23


한국교육 패러다임 바꿔야

일반 공산품은 1980년대에 대량생산 시스템-판매자위주 시장을 접고, 소비자 시장 시대로 접어들어 질적인 경쟁에 돌입했다. 전자, 자동차, 철강 등 한국의 주력 수출품은 세계시장에서 질적인 승부로 살아남은 품목들이다.

한국 대학들은 이러한 경제시스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질적인 문제는 접어두고, 양적인 팽창에 주력해왔다. 학생 수, 학교부지 등 규모 확대에 전력투구했다. 2000년대에 불거진 불량 학생 논쟁은 ‘기업이 세계 시장 경쟁에 있어서, 대학들의 부실 교육 때문에 발목을 잡힌다’는 것에서 비롯됐다. 이를 계기로 대학들은 실용 교육을 강화하고 있고, 정부는 대학 종합평가를 시도하고 있으나, 근본적인 문제를 간과함으로써 형식적인 평가에 머물고 있는 상태다.

한국 교육의 문제는 구조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면이 더 크다. 첫째, 교육 시장이 판매자위주 시장에 머물고 있어, 소비자 중심 교육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는 실정이다. 즉, 학교 발전의 원동력을 학생 발전에서 찾으려는 통찰과 생각이 부족한 상태이다. 둘째, 교육 부실의 모든 책임을 대학에만 밀어붙이거나, 대학 또한 학생의 무능으로 치부함으로써 실질적인 교육 책임자인 교육 당국, 교수, 심지어는 학부까지도 책임을 기피하고 있다. 셋째, 전임교수의 정년까지의 탈락률이 10% 미만으로, 선진국 우수 대학들의 정년까지 생존율 10%와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다. 평생직장 보장으로 교수의 부실이 일반화된 상태다.

아울러 교육기관은 대학평가를 양적이고 외형적인 평가에 머물게 하고 있으며, 질적인 문제를 빗겨나가게 하고 있다. 즉, 학생 교육성과에 대한 평가는 교수의 자의적인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되고 있으며, 교수의 교육 내용과 교육프로그램 등 교수 평가도 객관화가 미흡한 상태다. 그런데 한국의 고등교육 시장을 개관해 보면 앞서 제시했듯이 교육 소비가 공급(인가정원)에 못 미치는 출초(出超)상황에 진입하고 있다. 교육의 질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이 해외 유학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심지어 선두 기업군은 외국인의 직접 고용을 확대함으로써 문제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이렇게 교육 소비자의 질적인 욕구가 증대되고, 국내외적으로 대학간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질적인 문제를 안이하게 생각한다면, 소비자의 외면을 받는 것은 물론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다. 오히려 질적인 문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타 대학에 한발 앞서 정면 돌파하는 전략적 선택을 한다면 좋은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은 교육품질 강화책으로 ‘양적 추구’에서 ‘질적 추구’를, ‘대학중심’에서 ‘학생중심’으로, ‘규모 확장’에서 ‘교육의 질적 향상’과 ‘우수학생 배출을 통한 교육소비자 인지도 제고’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대학들도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사용하는 품질보증/품질관리(Quality Assurance/Quality Control)를 채택해야만 한다.

이를 간략하게 축약하면, 외부평가(교육당국)와 별도로 대학 자체의 QA/QC 제도를 수립하여야 하고, 학생 학업성취도 평가와 교수 교육과정, 교육내용 평가 시에 다단계 평가 제도를 수립하여, 내부구성원 간 교차점검이 가능하게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외부의 권위 있는 전문가에 의한 외부 평가를 강화함으로써 자의적인 평가를 최대한 배제하고 실질적이고 객관적인 평가가 되도록 해 이를 상설 운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가 정착되려면 학교당국, 교수, 학생의 많은 고통과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우선 학생은 상당한 노력 없이는 엄격한 학사관리의 벽을 넘을 수 없게 되며, 교수는 자신의 교과와 교육내용이 공개적으로 평가됨으로써 노력하지 않고서는 정년 보장은 물론 교수로서의 생존이 위험하게 되는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학교당국은 품질관리 체제로 전환하고, 학업성취와 학업 분위기 조성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과 재원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방열(대한농구협회장·전 건동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