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서완석] 한국의 아메리카컵 도전

입력 2013-06-03 19:32


스포츠가 국가 이미지를 높인다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가까운 우리 역사를 봐도 한국은 서울올림픽 개최로 국격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고들 한다. 한국전쟁의 상처를 딛고 신흥 개발국으로 우뚝 선 한국을 세계인들이 직접 와서 보고 간 게 결정적이었다.

올림픽 개최뿐 아니라 수많은 국제대회에서 상위 입상한 선수들의 활약상도 한국의 이미지를 우호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현대 스포츠는 민족주의와 교묘하게 짝을 이뤄 스포츠의 승리가 국가와 민족의 명예를 드높이는 애국적 행동으로 동일시하도록 조직됐기 때문이다. 이제 스포츠의 승리는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선수가 속한 국가 역량의 총체적 우월로 상징된다. 따라서 국가는 우호적 이미지 고양을 위해서도 스포츠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의 아메리카컵 도전

국민들이 외면한 사이 한국 요트의 위대한 도전이 중단된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4년 만에 열리는 최고 영예의 요트대회인 아메리카컵에 출사표를 던졌던 ‘팀코리아’가 도전을 멈춘 것이다. 요트 제작비와 출전경비에 수백억원의 예산이 필요하지만 팀코리아는 국가와 대기업이 외면하면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대회 출전팀은 디펜딩 챔피언인 미국의 팀오라클처럼 재벌 총수가 사비를 대거나 자국 대기업의 후원으로 경비를 마련한다. 뉴질랜드는 타국 항공사인 에미레이츠 항공의 후원을 받고 ‘에미레이츠 팀뉴질랜드’란 이름으로 출전했다.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아메리카컵은 163년 역사를 자랑하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국제대회다. 대회 기간 시청자들만 연인원 85억명에 이른다고 한다. 국가 이미지를 단번에 높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이벤트인 셈이다. 10개 안팎의 요트팀이 출전해 3년간 예선전을 펼친 뒤 1위팀이 디펜딩 챔피언과 아메리카컵을 놓고 일전을 펼치는 방식이다. 오는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제34회 대회가 열린다.

한국은 이 대회 예선격인 월드시리즈에 2011년 처음 초청됐다. 월드시리즈에는 한국을 비롯,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뉴질랜드 스웨덴 중국 등 7개국 9개팀이 출전했다. 한국의 처녀출전은 팀코리아 김동영 대표의 공이 컸다. 그가 요트 강국인 뉴질랜드에 요트 유학을 하면서 세계 요트계 인사들과 오랜 친분을 쌓은 게 계기가 됐다.

영국 뉴질랜드 호주 등 다국적군으로 팀을 짠 팀코리아는 포르투갈 영국 미국 이탈리아에서 열린 6차례의 2011-2012시즌 월드시리즈에서 종합 6위의 성과를 거뒀다. 요트도 빌려 탔고 선수도 외국인으로 구성됐지만 태극기를 돛에 달고 이역바다를 누볐다. 타팀들이 프라다, 오라클, 에미레이츠 항공 등 후원기업명을 돛에 달았을 때 팀코리아는 오로지 ‘코리아’만 새기고 항해했다.

한국의 아메리카컵 도전

지난 4월 2013시즌이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시작됐지만 메인스폰서가 없는 팀코리아는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김동영 대표는 국내 글로벌 기업의 문을 두드렸지만 최대 400억원이 필요하다는 말에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고 한다. 국격을 높일 수 있는 이 같은 대형 이벤트는 단순히 경기만 열리는 것이 아니다. 경기장 뒤편에서는 후원사들의 은밀한 마케팅과 유력 경제인들 간의 사교, 그리고 국가 이미지가 교묘하게 결합된 고급 비즈니스가 매일 열린다.

새 정부와 더불어 되살아난 해양수산부가 최근 팀코리아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공식석상에서 아메리카컵 우승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정부와 국민들의 관심속에 아메리카컵을 향한 팀코리아의 도전이 멈추지 않길 기대해 본다.

서완석 체육부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