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실적 악화 기업들에게 불안감은 덜어줘야
입력 2013-06-03 19:29 수정 2013-06-03 22:12
기업의 각성·혁신만큼 안팎의 불확실성 해소 절실하다
정부를 비롯해 국내외 연구기관들이 앞을 다투듯 올 우리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내려 잡기 시작하더니 실제로 기업들의 성적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올 1분기 매출액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줄었다. 글로벌 경기 회복이 시원찮은 가운데 엔화 약세마저 가속되면서 기업들이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한국거래소와 한국상장사협의회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12월 결산법인 625개사에 대한 매출액 분석을 실시한 바에 따르면 1분기 매출액은 총 286조421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로 1.35%, 약 4조원 감소했다. 특히 철강금속, 화학, 유통, 운송장비의 수출 및 유통 분야의 매출이 부진했다. 이 네 분야의 매출 감소 규모는 8조5191억원으로 전체 매출 감소액 3조9208억원의 배 이상이다.
조선·건설 부문의 경기침체로 철강금속산업이 힘을 잃었고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화학과 유통산업이 위축되는 모습이다. 여기에 이어지는 엔저 탓에 수출경쟁력을 잃어 운수장비업종 매출이 급락하고 있다. 다행히 1분기 중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4.56% 늘었으나 삼성전자가 전체 영업이익의 31%를 차지할 정도로 호조세라서 이를 빼고 보면 역시 낙관적이지 않다.
문제는 안팎의 난제가 이어지고 있어 기업들의 실적 악화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우선 국내적으로는 경제민주화 입법에 대한 심리적 위축감이다. 불법 하도급 문제를 비롯해 일감 몰아주기 등의 불공정 거래 관행은 당연히 교정돼야 하며 바람직한 경제활동을 저해하는 행태에 대해서는 제동을 걸어야 마땅하나 현재는 입법 단계에 있어 규제의 수위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법안들은 그간의 대기업·성장위주 관행이 빚어낸 문제점을 시정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자칫 선의의 ‘시정 노력’이 수위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시간 끌기로 이어지면 적기 의사결정이 필수인 기업 경영에 심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투자심리 위축 방향으로 방망이를 휘둘러선 안 된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뜻일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각국의 양적완화에 대해 주요 선진국들이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글로벌 유동성 축소 여파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지는 정부는 물론 기업들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3일 열린 ‘2013년 한국은행 국제 콘퍼런스’에서 김중수 한은 총재는 일시적으로 신용 경색이 일어날 수 있다며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침체 지속, 글로벌 양적완화의 반전, 엔저 지속, 소비·투자심리 위축, 경제민주화 추진 등 기업들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안팎의 문제들은 폭발력이 대단히 크다. 기본적으로는 기업들의 각성과 더불어 그에 상응한 체질개선 노력이 필요하겠으나 적어도 이들에게 불안감을 떠안기는 행보는 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부와 정치권의 협력이 요청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