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신 못차린 육군의 육사 성폭행 발표 내용

입력 2013-06-03 19:24

육군사관학교에서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고 육사 출신 여군 대위가 총상을 입고 숨진 것은 군 기강이 얼마나 무너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육군이 3일 발표한 육사 성폭행 사건 조사결과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다. 육군이 밝힌 ‘육사 性관련 법규 위반 언론 발표문’은 제목만 봐선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다. 선배 남자 생도가 술에 취한 후배 여자 생도를 자신의 숙소로 데려가 성폭행한 것을 이렇게 포장하면 안 된다. 성추행인지, 성희롱인지 헷갈리게 하지 말고 성폭행 사건이라고 못을 박았어야 했다.

발표문에 따르면 육사 생도 축제 기간인 지난달 22일 낮 영내에서 교수들과 생도 등 37명이 단결행사(음주)를 가졌다. 여자 생도가 구토할 정도로 과음했는데도 단결행사라고 표현하고 괄호 안에 음주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성폭행을 당한 여자 생도를 피해자라고 적시하면서도 성폭행 혐의로 구속된 남자 생도를 가해자가 아니라 사고자라고 둘러댔다. 또 발표문에는 ‘허용 범위를 넘는 음주가 있었다’고만 돼 있었지만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육군은 마신 술의 종류와 주량을 설명했고, 교수나 선배 생도가 음주를 강권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육사 명예를 실추시키고 피해자의 가슴에 천추의 한을 남긴 사안의 심각성에 비해 너무 안이한 상황 인식이다.

이번 사건으로 육사 교장(중장)이 전역할 예정이고, 음주회식에 참석한 교수부장·교수·훈육관·생도대장 등 11명이 징계절차에 회부된다고 한다. 일벌백계 차원에서 엄히 처벌하기 바란다. 또 이런저런 예방조치를 취하겠다는 다짐이 구두선에 그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엊그제 경기도 안양시 박달동 부대 영내 주차장에 세워진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목 부위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여군 홍모 대위 사건에서는 실탄 관리가 문제로 떠올랐다. 실탄은 5분대기조 임무가 끝나면 중대장이 점검한 뒤 연대 지휘통제실 간이탄약고에 보관해야 하는 데 외부로 유출됐다는 것이다. 실탄 관리는 장병의 생명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진상을 가리고 관련자를 문책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