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산적한 국정과제 확인한 박 대통령 100일

입력 2013-06-02 19:16

외교안보 분야 원칙 고수하되 내정에선 유연성 보여야

“신(神)이 나에게 48시간을 주셨으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했을 텐데, 출발이 늦다보니 (취임) 100일이라는 게 별로 실감도 안 난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출입기자단과의 오찬에서 한 말이다. 4일로 100일을 맞는 박 대통령의 심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얼마나 바쁘게 보냈는지를 읽을 수 있다. 실제로 박근혜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불거진 북한 김정은의 망동, 대내외적인 경제 환경의 불확실성 가중 그리고 고위직 인사파동 등 예기치 않은 변수들의 여파가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굳이 평가하자면 외교·안보 분야는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받는 편이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대북 입장이 경직돼 있다고 지적하지만 북한의 거듭된 위협 속에서도 ‘도발엔 단호하게 대응하되 대화의 문은 열어놓는다’는 일관성을 유지하며 중심을 잡은 점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지금도 북한은 자신들이 폐쇄 직전으로 몰아넣은 개성공단 문제와 관련해 입주업체 대표들의 방북을 회유하는 등 이런저런 제의를 통해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북한이 개성공단은 물론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바란다면 정부 간 대화에 응해야 한다는 자세를 견지하며 북한의 변화를 압박하고 있다.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또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빈틈없는 대북 공조를 확인함으로써 위기를 진정시킨 것도 긍정적이다.

미진하거나 부정적인 측면은 많다. 무엇보다 ‘윤창중 사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인사 난맥상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란 생각을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불통인사’가 근본 원인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윤창중 사태는 불통인사가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박 대통령이 국정기조로 제시한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도 아직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경제 분야의 경우 박 대통령은 저성장의 늪에 빠진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방편으로 창조경제 구현을 내세우고 있으나 그 실체가 아직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태다. 양극화 심화와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신성장동력 개발을 통한 일자리 창출 등으로 국민행복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세밀한 비전 제시가 아쉽다.

새로 선출된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의 회동 계획이 정해지지 않는 등 정치권과의 소통 노력도 여전히 부족하다. 경남 밀양의 송전탑 사태에서 보듯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시스템 구축도 시급하다.

100일에 성과를 기대한다는 건 욕심일 수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말끔하게 정리된 것이 하나도 없으며,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점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점은 과감히 시정해야 한다. 내정에서는 원칙보다 소통과 유연성을 중시하는 일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