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노믹스 뿌리는 1930년대 경제 회생시킨 다카하시의 경기부양책”

입력 2013-06-02 18:43

일본 정치가 다카하시 고레키요(高橋是淸)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강력하게 펼치는 ‘아베노믹스’ 때문이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재무상은 지난 4월 19일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아베노믹스에 영감을 준 것은 루스벨트와 그의 경기부양책 모델이 된 다카하시 고레키요”라고 말했다. 다카하시는 1921년 일본 11대 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재무상을 지내던 시절(1932∼1936년) 디플레이션에 빠져 있던 일본 경제를 회생시켜 명성을 쌓았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세계적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지난달 3편의 ‘다카하시 보고서’를 잇따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아베노믹스가 다카하시의 경기부양책과 뿌리를 같이한다고 밝혔다.

아베와 다카하시가 처한 상황은 상당히 닮았다. 일본은 1차대전의 호황이 끝난 뒤 10년 이상의 장기 디플레이션에 빠져 있었다. 수출이 곤두박질치고 엔화 가치는 고평가됐다.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처럼 관동대지진(1923년)이 일본 열도를 휩쓸고 지나갔다. 아베는 미국발 금융위기, 다카하시는 대공황으로 경제위기를 겪었다.

다카하시는 재무상에 오르면서 환율·재정·통화의 3가지 경기부양책을 제시했다. 금본위제를 포기해 엔화 가치를 40%나 폭락시켰다. 이어 국채를 찍어 재정지출을 확대했다. 늘어난 지출은 주로 군비 증강과 대규모 공사, 만주국 건설 등에 투입됐다. 금리도 적극적으로 떨어뜨렸다. 다카하시 덕분에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대공황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골드만삭스는 아베 정권이 다카하시와 같은 결과를 얻지는 못할 것으로 평가했다. 바로 국가부채 때문이다. 다카하시가 취임하기 전 일본의 국가부채는 국민총생산(GNP)의 50%를 갓 넘었었다. 반면 아베가 집권하기 직전 일본의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240%에 이르렀다. 통화량 확대 효과도 불투명하다. 골드만삭스는 “현재 일본은 통화량이 GDP나 물가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늙고 활력을 잃어가는 일본의 인구구조가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리고 소비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가 회복되자 다카하시는 군비 축소 등 재정지출 삭감을 추진해 군부의 반발을 샀다. 1936년 2월 26일 젊은 장교들은 다카하시와 내각 각료를 암살하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