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그룹 결국 해체되나… 막 내리는 샐러리맨 신화

입력 2013-06-02 18:43 수정 2013-06-02 22:52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는 크루즈선의 ‘수도’다. 마이애미 앞바다에는 세계 주요 크루즈선의 90% 이상이 취항한다. 세계 최대 크루즈선인 ‘로열 캐리비안 오아시스’ 역시 이 바다를 넘나든다. 이 선박의 제조사는 STX그룹 계열사인 STX유럽이다.

STX유럽은 세계 3대 크루즈 조선소 중 하나로 전 세계 크루즈 시장의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은 2007년 노르웨이의 크루즈 조선소 ‘아커야즈’를 인수하며 “생애 가장 기쁜 순간”이라고 밝혔었다.

1973년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STX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강 회장의 성공 신화가 최대 위기에 놓였다. 사재를 털어가며 키워온 STX그룹이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했다. 위험을 무릅쓴 공격적 인수·합병(M&A)으로 그룹을 키워 ‘스피드 경영’이라 평가받았던 그가 혹독한 구조조정 끝에 다시 재기의 발판을 만들 수 있을까.

◇STX그룹 공중분해되나=우리은행이 STX그룹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채권단 자율협약을 신청한 ㈜STX의 담보주식 653만주(지분율 10.8%)를 처분하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2일 확인됐다. 이 주식은 강 회장이 우리은행에 담보로 제공한 것이다. 우리은행은 ㈜STX와 STX조선해양·중공업·엔진 등에 대한 감자와 출자전환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자와 출자전환이 이뤄지면 1년 새 주당 1만원대에서 2000원대로 주저앉은 ㈜STX 주식은 사실상 ‘휴지조각’이 된다. 우리은행이 담보주식을 처분하려는 것은 이로 인한 추가 손실을 막기 위한 ‘손절매’ 격으로 풀이된다.

채권은행 관계자는 “STX는 감자와 출자전환이 확실시된다”며 “대주주 지분은 없애고 소액주주 지분은 통상 5대 1에서 10대 1 수준으로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STX 주식 250만주를 담보로 잡은 한국증권금융도 주가 하락에 따른 반대 매매로 지분율을 꾸준히 줄여왔다. 우리은행과 한국증권금융이 담보로 잡은 ㈜STX 주식을 모두 팔게 되면 강 회장의 ㈜STX 지분은 올초 39.6%에서 7.4%로 급감하게 된다. 사실상 강 회장이 경영 지배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STX그룹의 공중분해 가능성도 높이지고 있다. 73년 쌍용양회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글로벌 기업 수장까지 오른 강 회장의 40년 인생의 결과물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샐러리맨 신화 사라지나=STX그룹은 강 회장이 사재를 털어 2001년 자신이 최고재무책임자(CFO)로 근무하던 쌍용중공업을 인수하면서 출발했다. 살던 집까지 팔아 인수 자금을 모았다. 50세에 시작한 도전은 10년간 멈출 줄 몰랐다. 2001년 대동조선(현 STX조선해양), 2002년 산단에너지(현 STX에너지), 2004년 범양상선(STX팬오션) 등을 인수하며 순식간에 재계 13위로 성장했다.

시장에서는 그에게 ‘스피드 경영’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정점은 2007년 아커야즈를 인수할 때였다. 미국과 유럽 앞바다에 크루즈를 띄운 유일한 국내 조선업체인 STX그룹은 성공 신화를 써내려가는 듯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2010년 유럽 재정위기가 닥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조선·해운업황이 바닥으로 치달았다. 주력 계열사인 STX조선해양의 수주량이 급감했다. STX엔진과 STX중공업 등 계열사는 휘청거렸다. 강 회장은 과거 방식대로 M&A로 출구를 찾으려 했지만 실패했고, 시장의 신뢰마저 잃고 말았다.

강 회장은 “STX의 현 지배구조인 지주회사 체제는 향후 신속한 경영정상화는 물론 효율적인 구조조정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며 그룹의 공중분해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채권단의 시각은 냉랭하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