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의 여행] 김수영 ‘책형대에 걸린 시’

입력 2013-06-02 17:37


“나는 사실 요사이는 시를 쓰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다. 4·26이 전취(戰取)한 자유는 나의 두 손 아름을 채우고도 남는다. 나는 정말 이 벅찬 자유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눈이 부시다. 너무나 휘황(輝煌)하다. 그리고 이 빛에 눈과 몸과 마음이 익숙해지기까지는 잠시 시를 쓸 생각을 버려야겠다.”

4·19혁명의 시인 김수영(1921∼1968)은 4·19와 4·26 그 무렵의 심경을 산문 ‘책형대에 걸린 시’에 이렇게 밝히고 있다. 책형대(?刑臺)는 몸을 찔러 죽이는 형구(形具)를 말한다. 죽음의 도구인 것이다. 4·19의 환희와 벅찬 자유의 기운을 온몸으로 절감한 그가 일주일 뒤인 4·26에 이르러 시마저도 혁명보다 후순위라는 생각을 담아 이런 격정의 발언을 내뱉었던 것이다.

김수영이 1953년부터 작고 직전인 1968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신문·잡지에 발표한 시와 산문, 번역물 등을 묶어 최근 출간된 산문집 ‘책형대에 걸린 시’(도서출판 아라)는 서지학자 김종욱씨가 수년간 걸쳐 찾아낸 미공개 자료들이다. 자칫 사장될 뻔한 소중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한 인간이 남긴 글들은 문자노동의 집산이기 전에 그가 살다간 시대의 풍경이자 혈류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더욱 풍부한 김수영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가 평생 붙들었던 신념과 양심을 보게 된다.

잡지 ‘여상’(1965년 8월호)에서 발굴된 시 “아직도 밤섬에서는/ 땅콩들을 모래 위에 심고/ 나룻배를 타고 건너오는/ 국민학교 아이들이 호주머니에 넣고 와서/ 동무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하는/ 밤섬의 이 신기로운 여름 열매”(‘한강 변’ 부분)는 당시 서울 마포에 살고 있던 김수영의 눈에 들어온 시대상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또 앤 모로 린드버그, 프랑시스 잠, 칼 사피로 시인의 번역시와 장 부로귀 미셸의 ‘최근 불란서의 전위소설’ A. 막레이쉬의 ‘시의 효용’ 같은 산문 번역 글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는 맛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