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능력은 친밀함에서 온다
입력 2013-06-02 17:29
“여기에 어떤 인간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한 사람이 누워 있다” 스코틀랜드의 위대한 종교개혁가 존 낙스가 죽었을 때, 그의 묘비에 새겨진 글이다.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 나는 존 낙스가 천성적으로 강심장인 줄 알았다. 궁금한 마음에 그의 전기를 읽고 난 뒤 내가 알게 된 사실은, 그가 특별한 강심장이 아니었으며 너무도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깨달은 한 가지는 이것이다. 그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코람데오’ 하나님의 면전 앞에서 떨었던 사람이요, 하나님의 임재를 늘 의식했던 사람이다. 엘리야가 생각난다. 절대군주 아합 앞에서 가장 듣기 거북한 말을 했던 사람! 왕의 면전에서 죽음 같은 기근의 재앙을 선포했던 사람! 그 비밀이 무엇인가? 존 낙스와 똑같다. 그는 절대군주 앞에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고 있었다.
능력이란 친밀함에서 온다. 하나님의 임재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예민함, 그 예민함에서 나오는 친밀함, 그것이 곧 능력이다. 왜일까? 어차피 시대의 영적 기류를 사람이 바꿀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직접 바꾸셔야 한다. 로이드 존스의 표현대로 부흥은 하나님의 전적 주권이다. 바로 그 주권자의 찾아오심을 이루어낼 인물이 결국 필요한 것이다. 그가 누구인가? 하나님의 임재와 그 친밀함 속에 사는 사람이다. 기도의 사람 존 하이드를 보라. 인도의 영적 부흥의 주역이었던 존 하이드가 했던 것은 단 세 마디의 기도가 전부였다. ‘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 짧은 말을 세 번 반복했을 때, 그때 영적인 파도는 일어났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렇게 기억한다. ‘그것은 마치 대양의 해일이 그 회중을 덮친 것 같았다. 폭풍에 숲의 나무들이 휘듯이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휘었다. 한 사람의 순종을 통해 대양과 같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의 마음속으로 쏟아지는 순간이었다. 마음들이 깨어졌다. 그들은 죄를 고백하며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은 다시 기쁨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인류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문명의 혜택을 경험하고 있다. 문명의 혜택은 어둠의 그림자를 또한 동반하여 이전 시대와는 차원이 다른 ‘죄악의 파도’를 인류는 함께 경험하고 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열린 시대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을 향해 달리고자 하는 인간 본성은 마치 영적인 중력처럼 세상의 파도 속으로 우리를 함몰시키고 있다. 사탄은 말 그대로 이판사판으로 덤비는 것 같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애타게 찾으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친밀함이 능력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 단 일분일초도 하나님 임재를 놓칠 수 없다는 ‘거룩한 고집’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19세기, 실력 있고 경건했던 R M 맥체인 목사에게 당시 수많은 대형교회가 러브콜을 했다. 그러나 그가 번번이 거절했던 이유가 있다. 더 많은 시간 동안 기도할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는 그의 요청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그리운 시대다.
<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