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시 눈을 감아야 보이는 畵面… 권현진 개인전
입력 2013-06-02 17:19
그림을 보기 전에 지그시 눈을 감아 보시길.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밝은 조명 아래에서는 황홀한 빛깔의 영상이 나타나고, 어두운 곳에서는 별빛의 그림자 같은 게 어른거릴 것이다. 4일부터 16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청작화랑에서 개인전을 여는 권현진(34) 작가의 작품은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화면에 옮긴 것이다.
그의 그림에는 빨갛고 노랗고 파란 무지갯빛 색깔이 흐르고 섞인다. 화산의 용암이 분출한 듯 색채의 향연이 펼쳐진다. 의도하지 않고 순간적으로 조화를 이룬 색감들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심리적인 내면 풍경을 추상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작품이다. 예쁘고 만화 같은 작업이 주류를 이루는 젊은 작가들의 세태에 추상적인 작품으로 새로운 실험을 감행하는 도전정신이 빛난다.
이화여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미국 명문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유학한 작가는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에서 미디어아트를 전공했다. 평면 회화를 생동감 있는 붓질로 입체적이고 율동적으로 보이게 하고, 그림이 시시각각 변하는 3차원 영상 작업도 병행했다. 아크릴 물감의 다양한 색을 조합해 이미지로 형상화하기 위해서는 숱한 노동을 필요로 한다.
어릴 적부터 보이지 않는 세상에 관심이 많았다는 작가는 떠도는 공기와 바람, 사랑하고 슬퍼하는 감정을 느끼는 걸 중요하게 여겼다. 이를 자신만의 이미지로 표현하기 위해 미술대학을 선택했다. 신진작가 지원·발굴에 힘쓰는 청작화랑 공모 당선 기념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의 타이틀은 ‘눈을 감아야 보이는 세상’이다.
작업 전에 두 눈을 꼭 감고 빛을 보면서 안구에 나타나는 색의 환영을 그린 20여점을 내놓았다. ‘내 맘이 흔들리면’ ‘바다는 꿈을 꾼다’ ‘진실 속에 묻어나는 그 아픔’ ‘파란 그 뜨거움’ 등 작품 제목이 다분히 시적이다. 자신의 그림과 프랑스 작가 클로드 모네의 ‘수련’을 연결시킨 미디어아트 ‘모네의 수련 그리고 그 이후’ 등 영상 작품도 눈길을 끈다.
한 편의 시를 짓듯 운율이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작가는 ‘바람이 그림을 그려놓았습니다’라는 제목의 시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손안에 바람이 스며들면/ 가슴에 품은 사연을 펼쳐 놓는데/ 캔버스 그 속에 살아가는 색깔의 서러움이/ 가득하게 그려집니다./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한 끝없는 열망,/ 나도 모르게 그려놓는 그들을 보노라면/ 어느새 외로움을 밀어 놓게 됩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기운 생동하는 현대추상화의 새 면모를 보인 작가는 ‘잔칫날’ 그림으로 유명한 고(故) 이두식 전 홍익대 교수의 정년퇴임전에 초대받기도 했다. 역동적이고 화려한 면에서 두 작가의 작품이 닮았다. 프랑스 장 샤를르 장봉 전 파리8대학 교수는 그의 작품에 대해 “색과 선, 빛과 그늘을 당당하게 보여준다. 용암이 분출하는 지구 표면의 움직임 같다”고 평했다(02-549-3112).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