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우체국-르완다 김보혜 선교사] (6) ‘페이스메이커’로서의 선교사
입력 2013-06-02 17:36
짓궂게 굴던 술꾼, 성가대에 서있는 모습보고 ‘깜짝’
선교사로 일하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선교지에서 어떤 사역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처음엔 신학교 사역을 위해 왔으니 답변이 간단했지만 지금은 교회 개척과 건축, 유치원 설립, 목회자 교육, 구제, 장학, 직업 훈련 등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니 점점 우물쭈물하게 됐다. 이런 모습을 보고 누군가 ‘종합 사역’이라고 정리를 해줬다. 개발도상국 혹은 후진국에서 일하는 선교사는 나처럼 대부분 중심 사역 말고도 다양한 일을 하는 것 같다.
현재 진행하는 모든 사역의 센터 역할을 하는 키니냐교회를 건축하던 때를 되돌아본다. 교회 건축 과정을 지역 주민의 불신자 전도를 위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큰 계획을 알지 못한 채, 처음에는 도시개발계획으로 인해 교회를 보수하는 정도로만 알았다. 단순히 후원 비용을 전달하는 역할만 하면 될 줄 알고 교회 건축에 관여했다. 교회 건축과 개척 등은 내 은사가 아니라는 생각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정부에 토지가 수용되고 교회를 이전·신축하는 상황에 이르자 외국인인 내가 나서야 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
‘건축 허가가 순조로울 것’이라는 현지목회자 무히지 목사의 단순한 상상력을 믿고 동참하면서 복잡한 허가 과정뿐만 아니라 전체 건축 과정을 떠맡게 됐다. 건축 허가를 기다리는 여러 달 동안 주일 예배 후 성도들이 교회부지에 모여 건축을 위해 기도할 때였다. 다 떨어진 여자 원피스 같은 것을 입고 늘 술에 취한 채 내 앞을 막으며 “어이 외국인, 사진 좀 찍어줘”라며 조르던 아저씨가 있었다. 갈 때마다 매번 귀찮게 하고, 사람들은 구경거리인 듯 낄낄거리는 것이 영 불편했다. 어느 날 사진을 주면 교회 나오겠다는 약속을 받고, 폴라로이드 사진을 한 장 찍어줬다.
교회 건축이 시작되던 날 비록 막노동이지만 일당을 받기 위한 마을 주민들로 시끌벅적했다. 공사에 필요한 기술자를 뽑는 일보다는 넘쳐나는 잔심부름꾼 배치를 위한 지혜가 필요했다. 결국 교회 성도 중 일꾼의 절반을 충당하되 반은 자원봉사, 반은 일당제로 일을 하게 했다. 전도를 목표로 동네 불신 주민들에게도 일할 기회를 열어둔 것이다.
건축 부지를 다질 때 2m 이상 차이가 나는 경사진 땅 300여 평을 사람들이 까맣게 모여 맨 손으로 파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주변에 흔한 나뭇가지라도 꺾어 땅을 파면 쉽지 않겠냐’고 했지만 이들은 ‘천천히 하면 되지 굳이 쉬운 길을 찾아야 하냐’며 오히려 반문했다. 우여곡절 끝에 교회를 봉헌했다. 몇 주 뒤 무히지가 내게 성가대석의 한 사람을 가리키며 ‘저 사람 알겠느냐’고 물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그 사람은 사진을 찍어 달라고 조르던 술꾼 무렌지였다. 교회 건축이 진행되는 2년여 동안 와서 일하며, 화·목 기도회에서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다. 그는 침례도 받고 성가대원으로 봉사하고 있었다. 술로 인생을 탕진하던 버릇을 끊으니 자가용 자전거도 사고, 흙집이지만 자기 집도 장만하는 등 생활이 확 달라졌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가장 기뻐하며 교회에 출석하게 됐고 아이들까지 모두 교회로 인도했다.
모기장을 설치할 때 집에 가봤다. 비록 작은 흙집이지만, 성실히 일해 자기 집을 마련한 가장임을 자랑스러워하던 모습을 보자 나도 한 가족처럼 기뻤다. 계속 이어지는 유치원 건축과 초등학교 건축, 교회 안팎의 자잘한 보수작업 혹은 물건을 사서 나르는 일엔 늘 무렌지가 앞장섰다. 그는 현재 교회 사찰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은 일거리가 많지 않아 직업이 없는 젊은 남자들은 대낮부터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며 풀밭에 늘어져 잔다. 새로운 교회 부지를 찾기 위해 낯선 곳을 다니면서 풀밭에 누워있는 이들을 볼 때마다 저들이 제2, 제3의 무렌지가 될 것이라는 소망을 품는다.
5년 정도 옥수수와 콩을 나눠주며, 피그미족 전도를 위해 개척한 카나지교회 등에도 다양한 간증이 있다. 처음에는 일거리를 찾고자 교회 건축 현장에 왔던 이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침례 받고 정식으로 교회 일원이 됐다. 비용 부담은 크지만 교회 건축은 사람을 전도하는 탁월한 방법임이 확실하다. 챠니카교회에선 두 해 동안 염소를 나눠주며 지역경제를 발전시켰다 해서 초등학교 교실을 무상으로 임대받았다.
물이 부족한 넴바 지역에 교회를 지을 때 이야기다. 물탱크를 설치하고도 비가 내리지 않아 콘크리트 양생 작업을 할 수 없어 근처 호수에 가서 물을 길어올 물차를 사야 할 때가 있었다. 하루는 바쁜 일 때문에 물차 부르는 걸 까마득히 잊어버렸는데, 여간해선 많은 비가 내리지 않는 이 지역에 마치 하나님이 구름을 몰아 물을 짜 넣은 듯 비를 몰아주신 일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모두들 ‘하나님은 선교사의 건망증조차 기적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며 웃었다.
흙으로 지은 탓에 비만 오면 무너지는 루타레교회는 기초 공사만 한 채 몇 년이 지났다고 해서 벽을 쌓도록 후원금을 전달했다. 몇 달 후 ‘이쯤이면 벽이 올라갔겠지’하고 기대감을 갖고 방문했으나 넓은 바닥에 2m 이상 커다란 돌을 메운 상태였다. 후원금은 그렇게 다 써버리고 성전 안은 울퉁불퉁한 돌 때문에 걷지도, 서지도 못할 상황이었다. 예배당 안에는 늘 염소들이 풀을 뜯고 있어 도대체 여기가 ‘하나님의 집(House of God)’인지, ‘염소의 집(house of goat)’인지 여러 번 따져 물었다.
2년 이상을 그대로 지내기에 하루는 주민들에게 “성도 한 사람씩 와서 하루에 돌 한 개씩만 깨뜨렸어도, 그동안에 바닥을 고르게 했을 것”이라며 투덜거렸더니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다”라며 대단한 아이디어를 얻은 듯 예상 밖 반응을 보였다. 이때 불현듯 ‘아, 바로 이 일이 하나님이 내게 시키시는 일이구나’하고 깨닫게 되었다.
지독한 가난을 겪었던 내게는 보이는데 이들에게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며 작지만 유효한 도움을 주는 게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분명한 것은 이곳에서 몇 개 교회와 학교를 짓고 있지만 아니, 온 땅에 학교와 교회를 짓는다 해도 이 땅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이곳을 르완다 사람들에게 기업으로 주셨으니 이들에게 이미 주신 축복을 확인시키는 일, 이들이 주인의식을 갖게 하는 게 바로 나의 일이라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름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미국 선교사님들이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님에게 큰 영향력을 끼쳤기에 오늘의 세계 최대 교회가 가능했다. 마찬가지로 나도 이들이 영적 지도자가 되도록 돕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깨닫도록 돕는 게 사명이라 생각한다.
전에 아프리카 한 무슬림권 국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로부터 애로사항을 들은 적이 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성경공부를 해서 어느 정도 신앙이 성장했다 싶은데, 어느 날 갑자기 자신들에게는 함의 저주(창 9:25)가 있기 때문에 뭘 해도 안 된다며 주저앉아 신앙의 진전이 없다는 탄식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 3:13) 성경 속의 축복은 백인에게만 해당된다는 생각을 가진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깊고 오랜 피해의식을 회복시키려면 이들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특별한 존재임을 확신시키는 게 선결과제다.
자신의 기록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라토너의 최고 기록을 위해 함께 달려주는 ‘페이스메이커’처럼 최선을 다해 이들의 은사를 발휘하도록 돕는 게 나의 일이라 생각한다. 이제 다시 ‘선교사님은 어떤 사역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간단하게 답할 수 있다. “예, 저는 르완다 사람의 천국 마라톤을 위한 페이스메이커입니다.”
김보혜 선교사 (르완다 페파교단 협력 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