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김준섭] 잘못된 방향으로 달리는 일본인
입력 2013-06-02 19:10
‘잇쇼우켄메이(一生懸命)’는 일본인들이 가장 빈번히 쓰는 말 중 하나다. 이 말은 일본의 무사들이 대대로 물려받은 영지를 목숨 걸고 지키던 것을 의미하는 잇쇼켄메이(一所懸命)라는 말이 변화된 것으로, ‘필사적으로 열심히’라고 번역할 수 있다.
필자의 일본 유학시절 일상생활에서 혹은 TV 드라마에서 ‘잇쇼우켄메이 간바리마스’(필사적으로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정말로 많이 들었다. 심지어 데이트를 하는 남성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고소를 금치 못한 경우도 있었다.
말로만 ‘잇쇼우켄메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많은 일본인들은 매우 열심히 일하는데, 패전 후 잿더미에서 경제대국으로의 변신에 성공한 일본의 밑바탕에는 수많은 평범한 일본인들의 ‘잇쇼우켄메이’가 깔려 있다. 또한 이 ‘잇쇼우켄메이’가 극한의 경지에 오르게 되면 세상을 놀라게 하는 업적을 낳기도 한다.
최근 그와 같은 경지를 잘 보여준 인물로 에베레스트 최고령 등반에 성공한 미우라 유이치로씨를 들 수 있다. 프로 스키선수로서, 등반가로서 수많은 초인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는 미우라씨지만 그것은 평소 뼈를 깎는 노력을 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65세에 에베레스트 등정을 결심한 그는 외출할 때에는 항상 양 발에 무거운 것을 달고, 20㎏ 가까운 배낭을 메고 다녔다고 한다. 2003년 그는 당시 세계 최고령으로 기록된 70세7개월에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 2008년 75세의 나이로 다시 에베레스트를 정복(세계 역대 2위), 이번에 세 번째로 도전에 성공하면서 최고령 등반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잇쇼우켄메이’가 잘못된 방향으로 달리는 폭주기관차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전전의 일본이 바로 그 폭주기관차였다. 전후 경제발전의 밑바탕에 평범한 일본인들의 ‘잇쇼우켄메이’가 있었던 것처럼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반복한 일본이라는 폭주기관차를 지탱했던 것 역시 평범한 일본인들의 ‘잇쇼우켄메이’였다. 패전 후 많은 일본인들은 군부의 거짓말에 속았을 뿐 스스로도 전쟁의 피해자라고 말했지만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이 발발했을 때, 승전을 축하하는 제등행렬에 참가해 만세를 부른 사람은 모두 평범한 일본인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태평양전쟁의 말기 ‘잇쇼우켄메이’라는 말의 의미 그대로 목숨을 담보로 한 무기들이 등장하게 된다. 가미카제 특공대와 카이텐(인간어뢰), 후쿠류(인간기뢰) 등과 같은 상상을 초월하는 비인간적인 ‘특공무기’들은 ‘잇쇼우켄메이’의 가장 그로테스크한 발현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일본의 모습을 보면 ‘잇쇼우켄메이’의 방향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일 양국의 많은 노력에 의해 달성된 역사인식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마저 무시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아베 정권은 여전히 높은 지지율을 자랑하고 있으며, 군대 위안부에 대한 망언을 쏟아내고 있는 하시모토 도루는 어떠한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지만 여전히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 주요 정치인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이 지속되는 한 한·일관계의 회복은 매우 어렵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공기(분위기)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유행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일본인들이 주위 분위기에 맞춰 행동하는 패턴은 전전과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 한번 잘못된 흐름이 형성되면 좀처럼 바꾸기 어려운 것이다.
‘잇쇼우켄메이’ 일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하지만 방향이 잘못되면 그 아름다운 모습은 괴물로 변할 수도 있다. ‘잇쇼우켄메이’ 달리는 일본인들은 가끔 멈추어서서 지금 제대로 된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지 생각하는 여유를 가지기 바란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때다.
김준섭 국방대 안보정책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