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남혁상] 델로스동맹

입력 2013-06-02 19:09

제3차 페르시아 전쟁이 한창이던 기원전 481년 가을.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페르시아의 침공에 맞서지 않으면 안 될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았다. 이때 도시국가 중 맏형 격이었던 아테네는 그리스 연합을 주창했다. 강국과의 전쟁에 나서려면 도시국가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취지였지만, 스파르타와의 주도권 다툼 끝에 실제 성사되진 않았다. 그러나 2년 뒤인 기원전 479년 미칼레 전투가 끝난 뒤 아테네는 다시 한번 주도적으로 나서서 페르시아에서 독립한 사모스, 키오스 등을 그리스 연합에 가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느슨한 형태의 연합보다 결속력이 강한 동맹의 필요성 때문이었을까. 기원전 478년 아테네는 에게해 섬과 페르시아 연안의 그리스 도시를 묶는 제1차 아테네 해상동맹을 다시 한번 추진했다. 결국 170여개 도시국가는 에게해의 작은 섬 델로스(Delos)에 모여 공수(攻守)동맹 서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적국 페르시아의 공격을 받으면 함께 방어하는, 오늘날로 치면 상호방위조약 개념이다. 이 섬에는 동맹본부와 동맹기금을 쌓아놓는 금고를 두기로 했다. 현대사회의 방위비 분담 협상의 기원으로 평가받는 델로스동맹(Delian League)은 이렇게 탄생했다.

동맹과 관련된 모든 정책은 델로스섬에서 열리는 정기 회의에 도시국가 원로들이 모여 결정했다. 동맹에 가입한 도시는 원칙적으로 군함을 내놓을 의무를 졌다. 다만 회의에 따라 돈으로 대신 납부할 수도 있었다. 당시 델로스 동맹의 방위비 분담은 꽤 복잡했다. 한 나라의 군대가 동맹국에 주둔하는 게 아니라 도시국가 군대를 동맹군 형식으로 파견해 군비를 각자 분담하는 것 외에 해상 공동 작전에 대한 책임까지 분담한 것이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방위비 분담 협상 계절이 돌아왔다. 두 나라는 1991년부터 주한미군 주둔 비용에 관한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을 체결해 왔는데, 올해 진행될 협상은 내년 이후 수년간 우리 측 분담금을 결정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2008년 말 진행된 마지막 협상에선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간 유효한 협정을 맺었고, 현재는 연평균 8000억원대 분담금을 내고 있다. 그 동안의 진행 경과를 보면 91년에서 2008년까지 기준으로 국방예산은 3.6배 증가한 데 비해 방위비 분담금은 6.9배 증가했다. 협상이라는 게 어느 한쪽만 완전히 불리할 수도, 유리할 수도 없는 것이다. 최대한 합리적인 선에서 분담금 협상이 진행되고 타결되기를 기대해 본다.

남혁상 차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