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한연희 (1) 9명 입양한 나와 우리 가족이 특별하다구요?

입력 2013-06-02 17:15


나는 십수년째 인터넷에 일기를 써오고 있다. 가족의 일상을 담은 글을 다듬지 않고 거침없이 쓰다 보면 때론 발가벗고 무대에 선 것 같아 민망하다.

그럼에도 내가 꾸준히 인터넷에 일기를 쓰는 이유는 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 모두가 보편적인 가정의 범주에 속한다는 확신을 갖기 때문이다.

살면서 겪는 갈등, 부조화, 번민, 안타까움, 기쁨, 즐거움, 감격 등은 일상 가운데 자연스레 갖게 되는 감정이다. 입양가정이라 특별히 겪는 감정은 아니다. 입양가정이라서 남들보다 일상이 더 특별할 이유는 없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로 감사하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뿐이다.

간혹 사람들이 9명을 입양한 나와 우리 가족을 특별하다고 말하곤 한다. 그럴 땐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예전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뭐가 특별하지?’라며 속으로 반문했다. 질문자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어 오히려 웃음이 나던 때도 있었다.

내가 항상 가고 싶었던 길은 ‘분주함이 없는 편안하고 조용한 삶’이었다. 아이와 마주보고 눈을 맞추며 까르르 웃는 순간, 경치 좋은 찻집에서 좋은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며 가을단풍이 화려한 자연 속에 푹 잠겨 사색을 하는 순간…. 정말 이런 순간만큼은 시간을 멈추고 그대로 머물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막아서는 사람 한 명 없는데 나는 늘 시간에 쫓기고 일에 몰려 녹초가 돼 살았다. 누가 나로 하여금 이 모든 것을 못하게 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소풍을 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하고 싶은 일 대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했다. 아이를 입양하고 기른 것도, 입양 홍보 일을 하게 된 것도 모두 하나님의 뜻에 순종키 위해 한 일이었다.

쉬지 않고 열심히 달리던 어느 날, 나는 뇌경색이란 진단을 받았다. 고혈압과 당뇨병 증세도 연이어 나타났다. 의사는 약을 먹어도 더 이상 나아지지 않으니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자연 속에서 휴양하라고 권했다. 나는 머지않아 다가올 그날, 천국에서만 쉴 참이었다. 하나님과 함께 끝나지 않는 소풍을 천국에서 영원히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2013년 3월 하나님께서는 뜻하지 않은 쉼을 선물하셨다. 산이 병풍처럼 둘러진 경기도 이천의 아주 특별한 농가에서 지친 심신을 쉬도록 허락해주신 것이다.

가정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14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한 장로님을 사용해 이 집을 꾸미게 하셨다.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장로님께서는 요양 차 허물어져가는 이 집을 구매해 기도하면서 자연을 벗 삼아 건강을 회복했다고 한다. 이런 사연을 가진 장로님이 내게 이 집을 파신 것이다.

신실하신 하나님, 나보다 내 필요를 더 잘 아시는 분 앞에 무릎을 꿇었다. 며칠 기도하면서 나는 우리 집을 ‘생명 숲 하우스’로 이름 지었다. 이 집에서 생명이 흘러넘쳐 거대한 숲을 이루게 되라는 의미에서였다.

성인이 된 아들과 대학생을 제외한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 자녀 다섯 명이 모두 이천으로 내려왔다. 잠시만이라도 엄마와 하루 종일 함께 지내고 싶다는 아이들은 지금 이 집에서 소풍 온 듯 행복하게 지낸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생명이 가득 담긴 이 집에서 나는 아이들과 땅을 일구며 지내고 있다. 각종 채소로 소박한 밥상을 차리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나님, 소풍 같은 일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약력 △1957년 11월 1일 충남 부여 출생 △서울 신광여자고등학교 졸업 △서울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 재학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생명윤리상담사과정 강사 △한국입양홍보회 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