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긴축” vs 프랑스 “성장”… 갈등 위험수위
입력 2013-05-31 18:38
유럽의 앙숙 독일과 프랑스가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다. 유럽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독일과 성장을 강조하는 프랑스의 입장차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해법을 놓고 양국 간 비난 수위도 높아지면서 자존심 싸움으로 번질 조짐도 보이고 있다.
31일 파이낸셜타임스 등에 따르면 지난 29일 발표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회원국별 재정정책 권고사항이 독일과 프랑스가 직접 충돌하는 계기가 됐다.
EU집행위는 프랑스에 정부 재정적자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3%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조항 적용을 2년간 유예해 줬다. 대신 연금개혁과 공공분야 지출 감축을 요구했다. 한마디로 허리띠를 더 졸라매라는 주문이었다. 독일의 입김이 EU집행위에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다. 올랑드 대통령은 EU집행위의 요구에 “프랑스가 어떤 개혁을 할지는 EU집행위가 명령할 수 없다”며 “구체적인 사항과 절차는 정부가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랑스의 4월 실업자 수는 전달보다 1.2% 증가한 326만4400명으로 1996년 월별 집계가 시작된 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5월 정권이 바뀐 후 1년간 늘어난 실업자만 33만7000명이다. 24개월 연속 실업자가 늘었다. 올랑드 대통령의 지지율은 역대 대통령 중 최악인 20% 수준이다. 실업률 해소를 위해서라도 긴축 대신 성장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EU 전체를 이끌어가야 하는 독일은 입장이 다르다. 프랑스에만 ‘성장’이라는 예외를 인정하면 스페인과 그리스, 이탈리아 등에도 줄줄이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 이 때문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30일 올랑드 대통령과 파리 정상회담을 가진 뒤 EU집행위 요구를 강조했다. 또 “경제정책 조율이 더욱 필요하며 특히 유로그룹에서 그렇다”고 말해 프랑스의 독자행동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최고 지도자 간 이견뿐 아니라 독일 집권당인 기독교민주당(CDU)과 프랑스 사회당도 물과 기름 같은 사이다. 지난달 프랑스 사회당이 긴축을 강조하는 메르켈 총리를 “고집스러운 이기주의자”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한 내부 보고서가 유출돼 문제가 됐다.
이에 맞서 기민당 소속 중진의원인 안드레아스 쇼켄호프 외교담당 대변인은 올랑드 대통령을 향해 “그가 EU집행위가 제기한 개혁방안을 비판한 것은 EU의 합의와 조약정신에 어긋난다”며 “그런 얘기는 EU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메르켈 총리는 올랑드 대통령을 사이가 좋았던 전임 대통령인 프랑수아 미테랑이라고 잘못 부르기도 했다.
양국의 갈등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자 정상회담 뒤 양국은 합의사항을 강조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7개국) 상설 대통령제 도입을 EU에 제안키로 합의하는 한편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60억 유로(약 8조8000억원)의 EU 펀드 지출에도 속도를 내기로 했다. 독일이 원하는 EU통합 강화와 프랑스가 원하는 청년실업 해소가 적절히 배합된 합의였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