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사, 차관급과 5월 27일 오전 면담하고 5시간만에 라오스 태도바꿔 北送

입력 2013-05-31 18:27 수정 2013-06-01 01:15

탈북 청소년 9명이 북송된 27일 라오스 당국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이들을 북한에 인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31일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당일 오전 9시30분 라오스 외교부 차관급 인사는 이건태 주라오스 한국대사와의 면담에서 탈북 청소년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기대하게 하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라오스 당국은 갑자기 오후 2시45분발 비행기로 이들을 추방했다. 앞서 20일에는 라오스 당국이 22일쯤 이들의 신병을 우리 측에 인도해 주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라오스 당국이 5시간여 만에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은 라오스의 내부 사정과 북한의 강력한 요구 때문인 것으로 우리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라오스가 불법 입·출국이 쉬운 나라라는 국제적인 오명을 씻기 위해 탈북 청소년들을 전격 추방시켰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아울러 강제 추방되기 며칠 전부터 북한대사관 직원이 라오스 당국을 직접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안일한 생각으로 상황을 ‘오판’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라오스에서 탈북자가 발생할 경우 통상적으로 간단한 조사를 거쳐 우리 대사관에 인도해온 관례를 너무 믿었다는 것이다.

특히 라오스에서는 이번 추방 건 외에도 10여 차례나 더 탈북자들을 추방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동남아 지역에서 탈북자들을 지원해온 김모씨는 한 언론과의 접촉에서 라오스에서 탈북자들은 검거되면 일단 300달러의 벌금과 신원보증을 요구받고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국외 추방됐다고 주장했다. 탈북자의 경우 대부분 돈이 없거나 신원보증이 어려운 상황이어서 실제 추방건수는 더 많을 것으로 그는 추정했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무상원조 등으로 가까워진 라오스를 너무 믿고 실태 파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우리 정부가 탈북 청소년들의 북송을 사실상 방치한 정황도 속속 나오고 있다. 탈북 청소년들을 도왔던 선교사 주모씨의 어머니가 언론에 공개한 문자메시지와 통화 내용에 따르면 주씨 어머니는 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문자를 받고 현지 영사에게 “영사님 걱정돼 죽을 것 같아요. 알아봐 주세요”라는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현지 영사는 “기다려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또 주씨 어머니는 외교부에 직접 전화를 했지만 “라오스 대사관 전화번호를 줄 테니까 현지로 직접 연락을 하라”는 말만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탈북 청소년들이 북송된 날 주씨는 어머니에게 “애들이 북한대사관에 들어갔다” “(우리) 대사관 사람들은 전화도 안 받는다”는 문자를 보냈다.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은 또 북송된 탈북 청소년들의 신원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대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탈북민들의 신원 자체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 대사관 측이 탈북 청소년들에 대해 공식적인 면담 요청을 하지 않았다는 월스트리트저널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현지 우리 공관은 이들이 체포된 10일 이후 수시로 면담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칸티봉 소믈리쓰 주한 라오스대사관 공사도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이 탈북 청소년의 면담을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탈북 청소년들은 불법적으로 라오스에 왔기 때문에 북한으로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