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78세 택시기사의 검은 양심 되살아난 블랙박스가 밝혔다

입력 2013-05-31 18:04 수정 2013-05-31 18:54
지난 14일 서울 강동경찰서 교통조사계. 이틀 전 발생한 사고 조사를 받기 위해 방문한 택시기사 서모(78)씨는 “상대 오토바이가 신호를 위반했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당당함은 오래 가지 못했다. 29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도착한 문서 한 장으로 신호위반자가 누군지 확인됐기 때문이다.

국과수는 블랙박스에서 삭제된 영상을 복구한 내용을 문서로 경찰에 보냈다. 영상에는 지난 12일 오전 6시20분쯤 발생한 사고 상황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서울 둔촌동 서하남IC 입구 사거리에서 서씨의 택시가 정지 신호를 무시한 채 그대로 사거리를 통과했다. 그 순간 오른쪽 방향에서 출발한 오토바이와 충돌했다. 125㏄ 오토바이를 몰던 허모(65)씨는 충격으로 13m나 튕겨져 떨어졌다. 택시 속도는 시속 70㎞가 넘었다.

이 장면은 영원히 묻힐 뻔했다. 하지만 당시 서씨의 택시에 타고 있던 승객 A씨가 사고 다음날인 13일 경찰에 전화를 걸어 “사고가 났는데 운전기사가 블랙박스부터 만졌다”고 신고했고, 경찰이 곧바로 블랙박스를 국과수에 보내 복구를 의뢰하면서 들통났다.

경찰에 따르면 서씨는 사고가 나자 곧바로 자신의 블랙박스 장치에서 영상 전체를 삭제했다. 이후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경찰은 사고 당시 현장을 지나간 버스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오토바이 운전자 허씨는 아직까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증거인멸 및 교통사고특례법 위반 혐의 등으로 서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31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나이도 많은 서씨가 급박한 순간에 어떻게 블랙박스 영상부터 지울 생각을 했는지 의아스럽다”고 말했다.

신상목 정건희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