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현의 사막의 구도자들] 오리겐을 본받아

입력 2013-05-31 17:53

예수가 아닌 3세기 신학자 오리겐을 본받겠다니 어불성설이지 않을까. 하지만 내 속내는 말이 될 법도 한 고해이다. 왜 그런가. 예수의 삶에서 멀고도 먼 게 나의 삶이라, 감히 ‘예수 따라 살고 싶다’는 말을 선뜻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의 언저리라도 접근할 수 있어야 ‘그렇게 살고 싶다’고 할 자격이 있다. 예수처럼 가진 것 없이 홀로 떠돌며 복음을 선포할 수 있나? 예수처럼 (정)의를 선포하고 불의를 고발할 수 있나? 예수처럼 하나님 나라를 전하다가 종국에는 고난의 십자가를 질 자신이 있는가 말이다. 대답 대신 망설임과 침묵만이 남는다. 이런 처지에서 나는 ‘예수를 본받고 싶다’고 공연(空然)하게 말할 자신이 없는 것이다.

십자가 앞에서의 삶

혹자는 예수님도 가버나움에 집을 한 채 갖고 있지 않았나 주장한다(막 2:1, 9:33). 하지만 예수님이 집을 한 채 소유하고 있었다고 해도, 오늘날 우리네의 투자심리 같은 것과는 무관한 단순 거주 목적이었다. 들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으니(마 8:20), 가버나움의 집은 본래 버려진 집이었거나 그곳에 계실 때 누가 잠시 빌려준 것이리라.

그런데 나는 어떤가. 내 이름으로 등기된 집이 없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내가 머무는 조그마한 오피스텔은 빌 게이츠의 대저택 부럽지 않은 공간이다. 냉장고며 에어컨은 물론 스위치만 누르면 밥을 해 주는 전기밥솥 등 각종 가전기구가 즐비하고, 언제든 틀면 나오는 더운 물과 찬물 등 부족함이 없다.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신 말씀을 떠올려 본다면 나는 극도의 사치를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부족해서 밥솥을 놓고 갈등한 지가 벌써 두 학기 째다. 압력밥솥인 줄 알고 샀는데 전기밥솥이었다. 밥이 되기까지 줄잡아 50분은 기다려야 한다. 20분 정도면 밥이 나오는 압력솥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편리함, 안락함…. 세뇌되다 못해 아예 우상이 된 게 아닐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홀로 살아가는 건 어떤가. 이제 3주 후 방학이 되면 나는 몬트리올에 살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기를 고대한다. 가족이 없는 내 모습을 나는 상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주님은 홀로 사셨을 뿐 아니라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마 10:37)는 주님께 합당치 않다고 하셨다. 컴퓨터 바탕화면에 아내와 아이들의 사진을 띄워놓는 것도 모자라, 가족사진으로 벽면을 장식한 내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는 돌이켜보아야 할 숙제다. 주님께서 나를 모른다 하실까 두렵다(마 7:22).

정의를 선포하고 불의를 고발하는 건(마 12:34) 어떤가? 무엇보다 내가 정의를 말할 자격이 되는가가 문제다. 만약 내가 눈에 크게 띄는 악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에 근거해, 여러 가지 불의를 드러낼 자격이 있다면 불의를 고발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잘못된 것을 드러낼 경우 내게 돌아오는 후폭풍을 계산하면서 나는 가능한 한 조용히 넘어가고자 한다. 나는 ‘십자가의 수난’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다. ‘좋은 게 좋다’는 통속적 관념은 십자가의 수난과 거리가 먼 게 분명하다. 십자가 앞에서 나의 삶이 부끄럽다.

고육지책으로 겨우 해본 생각이 ‘오리겐을 본받아…’ 정도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것조차도 내 그릇을 지나는 과분한 본받음이다. 오리겐은 대(大)신학자이기 이전에 진정으로 영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신학은 잘 모르지만 그의 영적인 태도는 존경한다. 오리겐은 하늘나라를 위해 고자가 된 자도 있다(마 19:12)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다 못해, 자기 손으로 스스로 고자가 됐다. 주님께서 ‘머리 둘 곳 없이’ 사신 것을 생각하며 일평생 마룻바닥에서 잤고, 가족을 더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께 합당치 않다는 말씀에 귀 기울이며, 결혼하지 않고 홀로 살았다. 알렉산드리아 기독교를 대표하는 학교의 교장으로 강의를 했지만, 수업료나 일체의 사례비를 받지 않고 스스로 책을 필사해서 그 대가로 생계를 유지했다. 이런 영적인 삶 때문에 오리겐은 사막 수도자들의 아버지로 평가받는다.

순교자 오리겐의 삶

나는 오리겐처럼 수업료에 의존하지 않고 전액 기부하면서, 단지 내가 쓴 책으로만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전문서적인 내 책은 1년에 50권도 나가기가 어려우니 내 계획은 애당초 실현불가능하다.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는 정도는 마룻바닥에서 잤던 오리겐과 비슷하다. 하지만 가을에서 봄철까지는 따뜻한 온돌이니 이마저도 온전한 흉내는 아니다. 더군다나 그는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때에 고문 받고 후유증으로 순교한다. 순교자 오리겐을 모범으로 삼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그럼, 남은 길은 무엇인가. 마음과 영혼으로나마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신부라…, 그리스도의 신부라…, 신랑을 갈망하며 기다리는 것이 신부의 본질이라면, 신랑 되신 그리스도를 갈망하며 기다리는 삶으로 들어가리라 다짐해 본다(마 25:1 참조).

<한영신학대 역사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