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백소영] ‘가족’이 되어 주세요
입력 2013-05-31 17:57
싱그러운 대학 축제로 캠퍼스가 온통 들떴던 지난 금요일, 저는 모처럼 귀한 손님들을 맞았습니다. 대학생 언니들의 자유와 기회를 보며 혹시 상처받으면 어쩌지. 여대생들의 시선이 곱지 않으면 어쩌지. 설레임보다는 우려가 더 깊어 정작 강의 준비보다 기도를 더 앞섰어요. 십대미혼모 친구들이 인문학 강의를 들으러 학교에 왔거든요.
하지만 기우였습니다. 배가 남산만큼 나온 ‘어린 엄마’들은 여전히 십대의 호기심과 발랄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생후 50일밖에 안 되었다는 예쁜 아가도 엄마 품에 안겨 첫 나들이를 했습니다. 잠든 아가가 깰 세라 대학생 언니들은 동아리와 과 장터를 홍보하던 목소리를 얼른 낮추며 따뜻한 몸짓으로 그녀들을 환영했구요.
3년쯤 해온 이 만남을 통해 저는 가르치는 것보다 배우는 것이 더 많습니다. ‘십대의 미혼모’는 제 선입견보다 훨씬 더 순수하고 밝고 맑다는 것. 불쑥 찾아온 생명을 향해 서툴지만 엄마로서의 책임을 다하려 한다는 것.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 열심히 배우고 단단하게 홀로 서려 한다는 것. 그녀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편견 가득한 시선도 궁핍함도 아니랍니다. 아직 배울 것이 많고 자라야 하는 이 ‘어린 엄마’들은 배우는 동안 아기를 안전하게 맡길 수 없어 힘겨워하고 놀이공원에서 아빠의 목마를 탄 아이들을 보며 혼자 잡은 손이 미안해서 마음이 무너진다 합니다.
그녀들에게 가족이 되어 주세요. 매일은 힘들고 항상 할 수 없다 해도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만요. 혈연이 아니라 ‘관계’를 토대로 커다란 우주적 가족 공동체를 만든 분은 다름 아닌 예수님이셨답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고 누가 내 형제입니까?”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이들을 모두 가족이라고 하셨잖아요? 놀라운 것은 그녀들의 웃음을 보며 나도 함께 채워지고 치유받는다는 거예요. 한 가족이면 그런 거잖아요?
백소영 교수(이화여대 인문과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