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 칼럼] 열린 보수와 열린 진보의 만남을 위하여

입력 2013-05-31 17:58


세계개혁교회연맹의 총무를 역임한 바 있고 지금은 고인이 된 밀란 오포첸스키 교수는 교회사 속에 흐르고 있는 두 가지 종교개혁의 전통을 통전하여 제3의 종교개혁 모델을 만들어 내는 일을 위해 헌신하였던 선각자였다. 그는 프라하 출신 교회사가 아메데오 몰나 교수가 12세기 발덴저교회개혁운동과 15세기 얀 후스의 종교개혁운동을 ‘첫 번째 과격한 종교개혁운동’이라 이름하여 16세기 종교개혁과의 차별성을 부각시켰던 것을 세계교회의 신학적 담론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그는 세계개혁교회연맹 총무로 재직하는 동안에 두 종교개혁 전통에 속한 신학자들을 제네바로 초청해 두 종교개혁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찾아내 ‘개혁되었고 그리고 항상 개혁되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전통을 이어가고자 했다.

첫 번째 종교개혁에 속한 개혁자들은 복음의 사도적 기원에 관련을 맺으면서 초대교회의 실천적 측면을 전면에 내세웠다. 왜냐하면 개혁되었고 항상 개혁되는 프로테스탄트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바른 실천(orthopraxy)이 바른 이론(orthodoxy)만큼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오포첸스키 교수는 첫 번째 종교개혁이 강조점을 두고 있는 하나님나라의 실현의 과제를 전면에 부각시킴으로써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의’를 통해 이루어지는 구원의 진리가 개인 구원의 차원에 머문 나머지 사회 구원의 과제를 소홀히 하는 현실을 뛰어넘고자 했던 것이다.

필자가 교회사 속에 현존했고 우리에게도 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두 종교개혁의 전통의 통전을 꿈꾸었던 오포첸스키 교수의 비전을 떠올리는 것은 역사 이래 최대 위기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한국교회가 뚫고 나가야 할 돌파구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회사가 이만열 교수는 필자가 속한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의 창립 초창기에 열린 세미나의 주강사로 초청받은 자리에서 한국교회의 창조적인 미래를 위해 ‘열린 보수와 열린 진보의 만남’을 주창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한국교회의 전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닫힌 보수와 닫힌 진보들의 잘못된 신앙관과 행태라고 진단하고 한국교회가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기 위해서는 열린 보수와 열린 진보의 만남을 통한 새 지평이 열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역설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한국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에큐메니컬 진영에 속한 목회자들과 복음주의 진영에 속한 목회자들의 연합체로 출발했기에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한목협은 이러한 격려에 힘입어 에큐메니컬 진영을 대표하는 목회자인 강원용 목사님과 복음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옥한흠 목사님의 만남의 자리를 마련하고 한국교회의 창조적인 미래를 위한 비전을 모색한 바 있다. 당시 많은 신문들은 이 두 분의 만남을 역사적인 순간으로 평가하고 대서특필 보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자리에 함께했던 목회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잊을 수 없는 감동과 감격의 자리였음을 확인하면서 때늦은 감이 있는 대화의 자리를 통해 그동안 서로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잘못된 고정 관념들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어느 때보다도 지금이야말로 열린 보수와 열린 진보가 서로 만나 한국교회의 새로운 미래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대화하고 기도해야 할 때라 생각한다. 만나서 무엇을 할 것인가. ‘교리는 우리를 나누지만 봉사는 우리를 하나 되게 한다’는 것이 에큐메니컬 운동의 경험 속에서 터득한 소중한 진리이다. 한국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긴박한 개혁의 과제와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들에 직면하여 열린 보수에 속한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이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해결의 길을 모색하면 분명 한국교회의 창조적인 미래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창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목회자와 평신도들뿐만 아니라 에큐메니컬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에 속한 여성과 청년들이 만나 대화하고 기도하고 찬양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창조적인 미래를 열어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전대미문의 위기에 직면하여 열린 보수와 열린 진보에 속한 목회자와 평신도, 그리고 여성과 청년들의 만남과 대화를 제안한다.

<목포예원교회목사·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상임회장>